어머니! 우유 하나 드셔보세요.
(지금 저 말씀하시는 거... 아니죠? 모른 척.)
안사셔도 돼요, 그냥 드셔보세요 어머니!
사양할게요.(손짓으로 정중하게)
우유를 판촉 하러 나오신 분이 밝은, 사회성 짙은 웃음을 띠고 나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제 아이를 데리고 댁을 만난 적이 있던가요?
아니면 제 아이를 댁에게 맡긴 적이 있던가요?
내가 어딜 봐서 어머니인가.
그 흔한 사장님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왜 한국어에는 마담madam, 맴ma'am 같은 성인 여성에 대한 호칭이 없는가, 있는데 못 들어 본 것인가.
차라리 아주머니라고 하시지.
(아쉽지만) 내가 그럴 나이는 되었음을 인정하나니.
그런데 어머니라니. 그것도 굳이 못 들은 척하는데 재차.
그렇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비혼의 아이가 없는 중년(에 해당하는, 하지만 여전히 중년이 익숙하지 않은, 그렇다고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청년기라고 말하기엔 비양심적인)의 생애주기를 살고 있는 여성이다.
나의 어머니는 내 나이에 그 시대의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다 큰 자녀를 둔 어.머.니.였지만,
나는 지금 이 시대의 꽤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이렇게 살고 있는 비.어머니이다.
아주 가끔, 몇 년에 한 번 정도 지금의 내 나이에 부모님은 몇 살짜리 자식(들)이 있었구나,를 생각할 때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그 사이 참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30세를 눈앞에 두고 결혼하지 않고 있던 사촌언니는 무슨 큰일이 난 것 같던 시절이 있었고,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지만 30세였던 나에게 결혼은 지금 해도 괜찮고, 좀 나중에 해도 괜찮은 시절이 있었고,
또다시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후배에게 30세는 꽤 이른 결혼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나의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혼자 잘 살 수 있으면 꼭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잘…에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보다는 조금 자주 엄마를 "엄마"가 아닌 "이OO 엄마"라고 불렀다.
왜 엄마와 아빠는 이름을 미뤄둬야 하는가.
어른들은 원래 그런 게 매우 괜찮은 일인지, 아니면 엄마아빠라는 역할이 더 중요해서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일인지 이상했던 것 같다.
아직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초등학생 사촌 조카를 만나도 키를 접어 눈높이를 맞추고 나는 너희 아빠 사촌누나, 김OO 고모야. 라고 소개한다. 자의식 과잉인가.
역할이 더 중요하다면, 아마 평생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겠지.
그러고보면 어른이 되면서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참 드물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짧은 동안 OO씨, OO님이라며 나의 이름은 타인에게 불리는 제 역할을 했지만
어느 순간 직함과 역할이 생기면서 주임, 과장, 피디, 팀장...이라는 호칭이 때에 따라 이름을 대신해 왔다.
OO씨가 좀 그랬는지, 사실 뭐가 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는데, 이 '자기'라는 호칭에 적응하는 것도 꽤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하, 그러고보면 이름 만큼이나 호칭도 참 사연이 많은 아이다. 호칭 때문에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
때로는 내 순서인 번호표가,
손님, 회원님과 같은 일반명사가,
거주하는 곳의 호수가 나를 대신한다.
질문. 내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이름!
이라는 그 옛날의 퀴즈가 무색하리만치, 내 이름은
'처음 뵙겠습니다. OOO의 김아무개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하거나,
보고서와 성명 란에 기입하는 글자로만 대부분 존재해 왔다.
그래서 나는 그 촌스런 내 이름이나 애칭을 불러주는 이들이 참 정겹다.
지금으로서는 이름 밖에 나를 소개할 만한 적당한 것이 없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 이름 모를 그는 여전히 다른 이들에게도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우유를 권하고 있었다.
쯧~ 센스 하고는.
이라며 지나쳐왔지만, 막상 나 또한 무어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의식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