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디너리페이퍼 Aug 23. 2024

연극뽕에 빠지거나, 늪에 빠지거나

대학 때 한 학기 들었던 “연극의 이해”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극장과 무대 위 공연이 참 좋았다. 


시작은 많은 것이 그러하듯 작은 우연이었다. 

한창 공연을 보러 다니던 친구와 공연을 보았고, 졸업을 앞둔 겨울 그 친구의 정보로 접한 채용공고를 통해 대학로에 처음 발을 들였고, 고민의 시점에 자리를 옮겨 일하게 된 곳에서 연극에 맛을 들였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이 좋았고, 사람들의 인생에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질감으로 인사이트를 주고, 내가 느끼는 감동을 사람들도 느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 뒤 깨달았지만 

시작이 그곳이 아니었다면, 들고남이 많은 대학로 극단 생활을 그만큼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때의 이곳이 아니었다면, 지난 시간 동안 이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소위 예술활동이라는 것을 하는 단체는 규모를 기준으로 작은 단체와 큰 단체가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  

작은 단체는 작업을 일관된 방향으로 이어갈 수 있고, 그래서 맘먹으면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체와 나의 지향점이 같은 방향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일 수 없다. A부터 Z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배우는 것도 많고, 그만큼 책임의 범위가 전반적인 것을 아우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덜 안정적이다. 그리고 함께 하는 창작자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좀 더 다양한 창작자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큰 단체의 장점은 더 많은 창작자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때문에 그들과의 작업을 통해 더 다양한 작업 경험이 누적될 수 있다. 물론 만나야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피로도가 쌓이기도 하는 일이다. 게다가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공연을 계속 돌릴 수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예술계에 할당되는 정부지원금만으로는 충당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후원 및 협찬 등 대규모의 예산 확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민간단체와 공공단체의 차이도 있다.

민간단체는 상대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만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깊이도 깊어지지만, 아무래도 정부지원금을 따거나 다른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업별로 신청을 해야 하고 선정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사업의 수행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많은 경우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반면 공공단체는 예산 면에서 정부지원금이 담보되지만, 그렇다고 수월한 것은 아니다. 그 지원금을 받기 위한 전후의 과정들이 지난하고 고되다. 국민의 세금이니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규모도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꽤 있다. 하지만 분명 크지는 않아도 안정적인 즉, 지속적인 예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장기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 더욱이 공공 차원의 사업을 지속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관련 경험이 누적된다. 하지만 공공이라는 이유로 매 순간 최상, 최선, 최대 그리고 서비스를 기대받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물론 이 모두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극단과 극장에서의 꽉 채워진 하루하루는 신나게 흘러갔고, 

그 시간이 한 달, 1년, 3년, 5년, 10년…이 되었다.  

“재미있어. 아직 재밌어.” 

아주 가끔 만나 근황을 주고받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하는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현장이 아닌 곳에서의 나는 지쳐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모든 직장인들이 겪는다는 1년 차 3년 차의 슬럼프도 없이 나는 연극에 빠져있었고,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나빠도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순수가, 

주변에서 이야기와 의미를 찾아내는 예술가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자들이, 

앞뒤 가리지 않는 그들의 열정이, 

무대 위에 창조된 아름다움이,

아쉬운 공연이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좋았고, 

무엇보다 그 아름다움이 관객을 만나는 순간이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그 옆에서 크기에 상관없이 나도 무언가 손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가치 있는 일이라 느꼈다. 가장 처음 나에게 "O피디 생각은 어때요?"라고 묻던 연출님과 그 공간, 그 순간의 가슴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찰나의 공포가 스치는 적도 있었고, 미칠듯한 분노가 올라올 때도 있었고, 어떻게 해얄 지 알 수 없는 끝 모를 좌절이 지배하던 때도 있었다. 

고함치며 단전으로부터의 발성을 보여준 무지성과 

스스로를 과하게 신뢰하는 뻔뻔함과

주변의 의견을 듣지 않는 아집과  

논의와 협박의 어느 지점에 있는 교활함

들 때문에. 

또한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과 개개인의 절박함은 대체로 난감하다. 


하지만 언제나 첫 공연의 커튼콜에서 무대를 향한 관객의 박수는 객석 맨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강력한 치유제가 되었고, 마지막 공연의 커튼콜은 어제를 잊고 내일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순도 높은 연료가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전 04화 당신의 출근은 안녕하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