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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Aug 16. 2024

당신의 출근은 안녕하신가요

방전과 가까스로 회복을 반복하는 심리상태가 아니라 정작 몸이 말썽이었다. 몸이 마음의 척도인 것인지, 아니면 저대로 반항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병이 난 건 아닌데 어느 순간 온몸의 기력이 빠져나가, 걷는 게 힘들었다. 언제나 뭐가 그리 급하거나 신이 나 뛰어다니지 않으면 빨리빨리 걷던 나였는데 말이다. 


뜨거운 햇빛 탓인지, 숨 막히는 공기 탓인지, 이사로 인해 바뀐 출퇴근 루트와 교통편 탓인지, 감성 없는 공간 탓인지, 멀어진 화장실 탓인지, 머리 위 천장에 붙어 있는 눈부신 LED 전등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문제라면 모두가 문제였고, 그렇지 않다면 모두가 별 것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 매 순간 천근이 된 몸을, 아무런 신호가 잡히지 않는 맥 없는 몸을 그저 질질 끌듯이 이동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인해 마음이 다시 힘들어졌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출근길은 대부분 좋았다. 

휴가 후 첫 출근은 나름 설렜고, 동료들이 보고 싶었다. 지쳐 있어도 힘이 있는 척 혼자서 한 번씩 웃고 나면 정말 웃는 기운이 되어 사무실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서로의 저녁과 밤 이야기로 시작하는 하루가 좋았다. 지난밤 꾼 생생한 개꿈을 풀어놓는 것도 즐거운 시작의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못 믿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정말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힘들어졌다. 최대한 늦은 시간으로 알람을 맞추고, 간신히 일어나 최소한의 준비 후 문 밖을 나서 무거운 추가 달린 듯한 한발한발을 허덕이며 내디뎠다. 주변을 무겁게 누르는 다른 이의 한숨을 싫어하던 내가 순간순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실 무시하고 싶었던 신호가 있기는 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시행했던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상담 한 번 오시라는 상냥한 안내. 별생각 없이 일정 보고 연락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 갈 생각은 없었다. 시범적으로 운영했던 상담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는데, 실질적인 효능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다. ‘아, 그래요. 그렇군요.’로 시작하는 상대의 말은 그가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도, 나에게 공감한다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가 그리 필요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없는 시간을 쪼개 그런 상담을 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그런데 연락을 받고 다시 얼마 후 알게 됐다. 검사 결과에서 위험신호가 포착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 상담을 권장한다는 사실을. 

‘보시고 꼭 연락 주세요.’ 

검사 센터의 의례적인 후속조치가 아니었다. 뒤늦게 알아차린 나름의 신호였다.


그동안 일이 곧 일상이자 인생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명확하게 일과 일상이 분리된 사람들도 있었다. 

“야야, 좀 쉬어라아-” “쉬엄쉬엄 해라” 

라는 말과 누적된 휴가, 법정 근로시간 등을 이유로 나의 출근에도 제동을 걸던 이도. 초반에는 “네에…” 하면서도 ‘내 상황을 모르시네. 할 일이 있는데. 출근 안 해도 어차피 집에서 일해야 하는데…’가 진짜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강제적 휴식이, 타인에 의한 휴식이 아니었다면, 나는 조금 더 일찍 이 일을 멈췄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내가 바뀌었을까? 그건 또 모를 일이다. 생겨먹은 게. 


아직은 심신이 갈팡질팡만 하고 있던 시점, 한 친구와 오랜만에 점심식사를 한 다음 날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김진영 다큐에세이)라는 제목으로 ‘갭이어,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고, 본인의 경험과 함께 다른 이들을 인터뷰해서 적은 책이었다. 같이 일하다가 퇴사한 친구라 그날 나의 고민과 환경을 시시콜콜 떠들었나 보다. 선물로 받은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콘텐츠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취미인 동시에 일이기도 한 콘텐츠 기획자에게 일하는 것과 쉬는 것의 구별은 거의 불가능했다. … 엔진에 기름을 부어보려 했지만, 예전처럼 잘 타오르지 않았다. 돌아보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반복이 번아웃을 더 가속화한 것 같다.”


“일하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일과 삶의 균형,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균형,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균형, 혼자 하는 일과 함께 하는 일의 균형, 애를 쓰는 일과 날로 먹는 일의 균형, 잘하고 싶은 마음과 어느 정도 포기하는 마음의 균형. 이러한 균형들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만든다.”


“주니어 시절에는 실수가, 실패가 당연했다. … 경력이 쌓이면서 실수와 실패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넘어지지 않으려 힘을 주다 보니 넘어지면 더 크게 다쳤다. 다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많이 넘어져본 사람의 경쟁력이자 자랑은 더 이상 안 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잘 넘어지는 기술, 넘어져도 금방 털고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이었다.” 


그때의 나와 너무 닮아 있어 위로가 되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아팠다. 한편으로는 용기를 얻었다. 


학교 졸업 후 시작한 초반의 사회생활에서는 퇴사가 어렵지 않았다. 

뭐든지 시작은 새로운 경험과 배움의 단계라 흥미로울 수밖에 없지만, 그 흥미는 저마다의 유효기간이 있다. 그 기간이 지나면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때라고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민의 비중은 지금의 일과 직장에 대한 생각보다는 나의 다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가 있었다.  다만 함께 일하던, 점심식사를 함께 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정작 몇 안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항상 떠남을 위해 또는 떠날 수 있는 다음을 준비했고, 덕분에 공백 없이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작업의 재미가 길었고, 일과 사람의 의미가 많았고, 책임감의 크기가 커졌다. 어쩌면 그 사이 쌓인 내 커리어와 나이도 깊어진 고민에 한몫했을 거다. 그래서 퇴사도, 다음을 계획하는 것도, 우리 팀을 떠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결정은 해야 했다. 


결국 퇴사를. 그리고 내 멋대로 의미부여한 갭이어를 선택했다. 그게 휴식이 될지 발견이 될지, 몇 달일지 몇 년일지는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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