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자고로 낯설고 설레는 모험이었다.
낯설지만 새로워 설렘 가득한 시간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날, 그 짧은 순간 이대역 에스컬레이터만큼은 족히 내려가는 것처럼 길게 느껴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선 나는 몸집만 커다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호기심이나 흥미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그저 길잡이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두려움만 가득한 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그래. 그만두려거든 하루라도 빨리 그만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예상하는 엄마도 있지만, 그렇게 오래 같이 살았음에도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엄마가 많았다. 그날의 엄마도 그랬다.
“그래. 그만두려거든 하루라도 빨리 그만둬.”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인생 선배이자 어머니로서의 조언도 삼갔고, 그저 그렇게 짧은 두 문장이었다. 그리고 한 달쯤 뒤였나…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 한 번 더 말을 보태셨다.
“이왕 결정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그만둬. 평생 놀 성격은 안될 테니, 푹 쉴 수 있는 만큼 쉬고 다음에 할 수 있는 거 찾아.”
나에 대한 응원이자 동시에 평생 놀 수는 없다는 무언의 바람이 내포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내가 그 시점에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여행 중 서울에서의 연락은 계속되었다.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진심 어리게 마음이 쓰이는 것과 마음 바깥으로 비켜두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러려니 했다.
짧은 휴가가 끝나고 복귀한 이후에도 신경 쓰이는,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은 계속되었다. 역시나 언제나처럼 그러려니 했다.
공연제작을 하면서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사연에 사건사고는 하나도 없는지. 그 정도 케이스 스터디를 했으면, 조금이라도 익숙하거나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을 법도 한데 어쩜 이렇게 모든 케이스가 다른지.
지금 생각하면 케이스가 모두 달랐던 것보다는 심정적으로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일이라도 사람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니, 항상 새롭고 무뎌짐이 어렵다. 그 새로움이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하던 매력이었는데, 어느새 쥐약이 되고 있었던 때문이다.
공연 일은 좋든 싫든 끝이 있다. 좋으면 끝이 아쉬워 새로운 다음을 기대할 수 있고, 엉망이어도 다음이 있어 위안이 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을 맞이할 수 있는 작업이다. 좋아도 모든 것이 좋을 수 없고, 싫어도 분명히 좋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기획 기간을 포함하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이지만, 본격적으로 달리는 것은 3개월 남짓으로 전력질주를 한 후 누리는 꿀맛 같은 휴식이 가능하다. 쳇바퀴 같은 일의 루틴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처음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작과 끝에 대한 파이팅은 사라지고, 만족과 감동보다는 무기력과 우울이 나를 지배하게 되었다. 무언가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내 등을 떠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땐 정말 그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담당 프로듀서와 하우스매니저와 함께 다른 사람들 몰래 극장 주변에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귀신의 장난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또는 몇 년 전 중단한 고사를 다시 지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천지신명에게라도 빌고 싶은 마음에. 답을 찾을 수 없는 심리적 불안은 종교나 신념과는 별개로 기댈 수 있는 모든 존재에 의지를 하게 되곤 한다. 하물며 이곳은 어느 곳이나 귀신 하나씩은 존재한다는 극장이 아닌가.
어느 일요일, 새벽이라고 불러도 괜찮을만한 이른 아침.
그날도 수습이라는 걸 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일기예보 보다 조금 늦게 시작된 비 속을 걷는데
아무도 없는 텅 빈 언덕길에 주룩주룩 물결을 보이며 흘러 내려가는 비의 평화로운 장면이
그때의 내 심정과 너무 달라 비현실 같았다.
내가 뭐라고 온 우주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하지만 그 길은 어느새 퇴사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로 향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깨닫든 그렇지 않든.
조직의 성격과 업무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직장과 일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규모가 크면 커서, 작으면 작아서 서로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
내가 하는 일은 프로젝트 별로 고유의 역할을 하는 조직 안팎의 사람들로 프로덕션이 꾸려진다. 어디나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보니, 안팎 그리고 역할과 입장 차이에 따른 의견 교류와 조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일의 양보다는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더 컸다.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일의 특성일 뿐이고 하나하나 하다 보면 결국은 차례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공연을 향한 공동의 목표의식과 공동체 의식 안에서 이루어졌고, 결과는 어떠한 의미로든 성취감과 배움으로 돌아왔다.
운이 좋게도 프로듀서로서 경력이 쌓이면서 제작과 함께 기획적으로 흥미로운 일과 과제가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러한 도전들이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 도전은 결과의 성공과 실패를 불문하고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팀장이라는 역할을 하게 되고 보니, 일에 대한 재미보다는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슈들로 인한 좌절과 자괴감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어쩌면 팀장에게 요구되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위를 차지하는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가능한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욕심 탓인지 모르겠다. 다만 동료이자 후배들이 겪는 어려움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고스란히 같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계획대로, 바라는 대로, 기대하는 만큼 되지 않는 것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원망과 화가 짜증으로 비집고 나온다. 동시에 밀고 끌고 나가면서 내가 팀장이랍시고 사람들을 너무 푸시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고민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게 그때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