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나를 돌보다
그리 오래 살았다고 할 순 없지만 인생 전반을 돌이켜보면 내 식습관은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부모님께서 어릴 적 배불리 먹지 못한 기억 때문에,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자식들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항상 세끼 제대로 먹는 것을 중요시하신 것은 물론 한창 자랄 청소년기에 치킨과 같은 야식을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바로 사주시곤 했다. 본가에서 나와 살던 대학생 때도 절대 굶지 말라고 용돈을 부족하지 않게 주셨다. 용돈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내가 밥을 사주곤 할 정도로 말이다.
그 덕분인지 굶거나 폭식을 하는 식이장애를 겪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체중 감량을 위해 운동을 잠깐 할 때도 식사량을 조금 줄일지언정 식사를 거르거나 고구마 하나만 먹는 초절식을 시도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을 새기고, 밤을 새우며 시험공부를 하거나 회사에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끼니는 챙겼다.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곤 하나, 과연 건강한 음식을 먹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던 고등학생 때까지는 건강한 집밥을 먹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 자취를 하면서부터 건강한 식단과는 멀어졌다. 대학생 때는 하숙집에 있었지만 시험공부나 과제, 동아리 활동 등으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집으로 들어간다는 건 어려웠다. 자연스레 밖에서 사 먹는 것이 주식이 되었다. 매번 맛있게 먹기야 했지만 집밥보다 건강하지 못한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취업 후 회사를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혼자서 밥을 해 먹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간은 하숙집에 있다는 핑계로 요리하지 않았지만 나만의 부엌이 생긴 이후에도 요리는 멀기만 했다. 핑곗거리를 다시 찾자면 입사 이후 야근이 많았고 주로 회사에서 점심과 저녁까지 해결하다 보니 요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주말이면 친구와 약속을 잡거나 본가에 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서 하루종일 보내는 일이 적었다. 처음 버릇이 그렇게 잡히다 보니 스스로 고른 재료로 장을 봐서 식단을 짜고 요리해먹는다는 것은 여전히 딴 세상 얘기 같았다.
결혼해서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보다야 요리해서 집밥을 먹는 빈도가 늘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변엔 요리 자체가 즐거워서 자연스레 집에서 식사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같이 여행을 가면 취사도구가 있는 경우에 도맡아서 즐겁게 요리해주곤 한다. 곁에서 지켜보면 굉장히 진행이 빠르고 자신만의 레시피로 눈대중과 손대중을 믿고 착착해나가는데 결과물은 훌륭했다. 괜히 전문가 셰프가 있는 것이 아니듯 요리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배달앱의 등장으로 요리는 나와 더욱 요원해지게 되었다.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직접 요리를 하는 것보다 시간 절약은 물론 2인 가구 신혼부부에게는 식재료 낭비도 적고 비용이 오히려 저렴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애용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점심때 주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이미 입맛이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진 것도 컸다. 한 번씩 집밥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으로 주말에 어떻게든 만들어보면 맛있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아 남편이나 나나 평소보다 덜 먹게 되었다. 그럼 허탈감이 들어 한동안 부엌과 멀리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사실 평일 저녁에는 퇴근 후에 이미 허기진 상태로 오기 때문에 시간도 부족하고 무언가를 만들 에너지가 없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아마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지 않아서리라. 주말에도 평일 간 모자랐던 잠을 보충하기 바쁜 나였기에 칼보단 앱이 가까운 현실이었다.
그렇게 한쪽 구석에 밀어 두고 애써 못 본 체하던 요리라는 과제가 출산 후 다시 눈앞에 다가왔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쌀미음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요리부터 당도하게 된 것이다. 물론 시판 이유식을 선택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겨 이참에 이유식이라는 가장 기본부터 시작해서 요리를 조금씩 아주 차근차근 늘려나가는 기회로 삼자는 심산이었다. 실제로 죽을 만드는 것부터 채소를 다듬고, 데치고, 다지기에 이어 고기를 손질하는 것까지 요리에 기본이 되는 것들부터 익숙해지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나처럼 요리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한식요리사 자격증을 따겠답시고 요리학원에 가서 갈비찜 같은 메뉴부터 시작한다면 도리어 요리와 더 거리감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닫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 같다. 반면에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은 매일도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미세하게 준비할 것이 바뀌기 때문에 부담감 없이 배워가기 좋았다.
아이가 미음이나 진밥이 아닌 유아식을 먹기 시작한 돌 즈음부터는 밑반찬 만들기에 돌입하면서 요리다운 요리의 발걸음을 뗐다. 아이가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시기에 엄마도 그맘때에 요리라는 분야에서 아장아장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도 끓여보고 국수 요리나 파스타도 주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아이만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함께 먹을 수 있는 가정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가끔 외식을 하거나 시판 키즈 반찬을 구매해서 주면 아이가 깨작거리면서 잘 먹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크게 태어나 지금도 먹성이 좋아서 꽤나 통통한 팔다리를 자랑하는 아이인데도 말이다. 아기 때부터 엄마가 만든 이유식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외부 음식의 자극적인 맛이 아이 입에는 다소 두렵고 간을 약하게 한 엄마표 밥이 편안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뿌듯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러한 아이의 식성이 엄마가 계속 아이 밥을 챙겨줘야만 한다는 족쇄가 되어버린 걸 수도 있겠지만, 같은 반찬을 몇 번 줘도 잘 먹어줄 정도로 엄마표 음식에 한정해서는 소탈한 아이의 입맛 덕분에 아직까지 그리 버겁지는 않다. 그간 마음 한구석 짐처럼 남겨진 요리라는 분야에 용기 내어 다가갈 수 있도록 의도치 않게 큰 힘을 불어넣어 준 아이에게 고맙다. 나는 영영 못 할 것이라고 막연히 피했던 영역도 노력하면 더디게나마 해낼 수 있음을 새삼 알게 된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