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따라 15년 혹은 20년 전 잠시나마 알고 지냈던 분들을 보게된다.
신입 시절에는 여러 활동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는데 얼마 전 그중 한 분을 자료화면을 통해 보게 되었다. 척수마비 지체장애인으로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대단하고 멋진 분이셨다.
그분과 우연한 기회에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밥을 먹던 날 여러 이야기 끝에 그분이 장애인과의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순간 영문도 모른 체 직업정신으로만 나를 속이는 대답을 했다. 사랑하는 사이면 이유를 막론하고 무엇이든 다 가능하다고.
그러나 나는 그 질문과 동시에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이 아닌 타인으로서의 장애인의 삶과 직업으로서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가 떠올랐고 불편한 마음은 커져 있었다.
목 아래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조건에 대해 비장애인이 바라보는 시선이 궁굼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둘이서 밥을 먹을 기회가 있고, 편한 대화 속에서 비장애인으로서 나의 생각을 물어보셨을 것이다. 솔직한 대답을 원하셨을텐데 그러나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아마 그분도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사랑을 겪어보지 못해 생각하시는 모든 이유를 막론하고 어디까지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면 그것들은 이유가 될 수 없겠지요. 그리고 결혼은 어린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라고.
그분이 지나가듯 던진 질문이건, 고심 끝에 나온 질문이건 당시 나에게는 질문 자체가 무거웠다.
그 결과 가볍게 넘기고 싶었던 깃털 같은 마음속에 회피하듯 사랑까지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했던 당시의 내가 있다.
나는 그 이후 그분께 마음으로나마 진심으로 사과했다. 솔직하지 못한 대답에 대해.
나는 그 질문을 통해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한계를 긋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서로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비슷한 부분이 있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겠지만 이후 한계를 미리 긋고 대상화해 버리는 순간 서로에 대해 깊이 있는 호기심과 관심은 가라앉기 때문이다.
하여 긴 시간과 여러 경험을 관통한 후 같은 사람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구나 깨닫게 된다.
거기에는 다른 의미지만 사랑의 의미도, 사람도 변할 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