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는 1,945자, 중국어는 5만 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시아에 사는 사람으로서 왠지 모르게 영어보다는 한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재미있었다.
펜팔을 했다. 그중 한 분은 일본 병원에서 일하시는 50대 아주머니셨다. 어느 날 그분이 한국으로 방문하며 나를 만나고 싶다 하셨다. 찬바람이 뺨을 때리는 1월이었다. 추웠는데 본인을 데리고 관광을 시켜달라는 ‘과감한’ 제안을 하셨다. 몇 개월 이상의 꾸준한 펜팔을 하는 관계였기에 가볍게 좋다고 했지만 그분은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고, 나는 그저 ‘자습’ 차원의 일본어를 공부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번역 앱이 있으니 일단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숙소가 숙대입구역 근처에 있어 가까운 코스를 잡았다. 여의도공원, 중앙박물관을 갔다. 그렇게 다니던 중 압구정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본인의 면세 쿠폰이 적용되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압구정을 무려 1시간 30분을 헤매며 갔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박물관을 함께 갔다. 그런데 다니는 내내 신기했던 것은 서로가 간단한 단어 및 문장 정도만 알고 있음에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물론 둘 밖에 없었고 눈치코치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점에서 언어적 의사소통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사람은 다 똑같으니 다른 나라 언어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자.’는 작은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호주를 가게 되었다. 싼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기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를 경유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든 충분히 생각하고 움직인다. 사전 정보를 잘 확보하고 심지어는 공항의 화장실까지 사진으로 프린트를 해가는 성격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시 언어였다. 간단한 질문에 대해 사전 공부를 해갔지만 결국 이민국을 거치면서 나의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두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순서가 되었다.
“너 어디서 왔니?”, “대한민국”
“왜 방문했니?", ”언니 방문“
”왜 온 거니?", ”휴가“
정말 다행히도 문장이 귀에 들렸다. (혼자 가니 긴장감 때문에 더 들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후에 가족과 함께 갔을 때는 아무 문장이 들리지 않았다.) 대답은 단어로만 했어도 의사소통은 되었다. 호주에 도착했다. 여권만 내밀면 되는 입국 심사는 그렇다 쳐도 짐 검사를 위해 나왔을 때 다시 한번 제복 입은 호주 사람이 정말 빠른 속사포로 말했다.
“너 어디에 묵을 거니?”
- 말없이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여줌
“너 혼자 왔니?”, “네”
정말 이러다 입국 심사에 잡혀가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이 될 정도였고 순간 마음은 타들어갔다. 물론 도착해서는 언니가 함께 동행했기에 다행이었지만, 현지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온 어깨가 움츠러드는 위축감을 느끼는 순간들도 많았다.
해외를 나간 경험이 몇 번 안 되지만 느낀 점이 있다. 영어와 중국어 중 한 가지만 해도 세계 어디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큰 욕심보다는 간단한 인사 정도라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와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언어에 대한 호기심은 사실 단어 외우기에만 급급했고 문장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 호주,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가보니 간단한 몇 개의 문장과 단어, 공통으로 사용되는 화장실과 같은 그림만 알아도 지낼 수는 있었다. 물론 이민과 같이 그 나라의 정책이나 부동산 등을 알아가며 살아야 한다면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는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언어가 생존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통하지 않았어도 분명 통하는 것들이 있었다. 친절, 웃음, 배려와 같은 행동들이었다. 잘 몰라서 손짓 발짓하면 친절한 안내를 받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이 곳에서의 말과 삶에 대해 생각한다.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내 말의 의미를 다 알아듣겠지 하며 하나씩 하나씩 빼버린다. 여기서의 오류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이다.
비록 뜻은 전달될 수 있어도 함께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고 인간미 없는 행동들만 남게 된다. 주변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장면이다. 나도 그렇다.
모든 환경과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만은 없겠지만 웃음을 잃어가는 요즘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중 서로에게 통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멀리 가지 않고 가족들을 비롯하여 함께 일하는 팀 직원들에게 세계 공통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웃으면서 대화하기, 마주 보며 대화하기, 상대방을 배려하며 성실하게 대화하기.
말이 안 통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통했던 것을 생각한다. 대화라는 서로의 생각이 통하는 상황이라면 예쁜 언어를 얹으면 더 좋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화답을 하듯 다시금 웃으며 말을 거는 직원들을 보면 그냥 짠하고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정작 내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며 따뜻함을 지니는 세계 공통어는 ‘미소 지으며 대화하기’로 결론을 맺고 내일도 예쁘게 미소 지으며 사이좋게 잘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