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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것이 있었다.

by 토리가 토닥토닥

살아오면서 듣기 싫지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마음이 여리다.’라는 말이다.


‘여리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형용사로

1. 단단하거나 질기지 않아 부드럽거나 약하다. (살갗이 여리다)

2. 의지나 감정 따위가 모질지 못하고 약간 무르다.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다)

3. 빛깔이나 소리 따위가 약간 흐리거나 약하다. (박자가 여리다)

4. 기준보다 약간 모자라다. (이번에 사 온 천은 감이 좀 여리다.)


나에게 적용된 말은 두 번째였을 것이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눈빛에 휘둘리고 있던 그 하나하나가 ‘여린’ 나였던 것이다. '여리다’라는 말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내가 나 스스로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신철규-눈물의 중략 부분 /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096)



1년 정도 다닌 복지관에서 상사에게 마지막 몇 달을 “더 이상 기회는 없어, 마지막이야.”, “끝이야, 끝!”, “기회를 주기도 아까워...” 모욕적이다 못해 언어폭력으로 일관된 고문과도 같았던 시간이 있었다. 호출로 불려 간 회의실에 단 둘이 앉아 받았던 말들의 결과는 원형탈모, 대상포진, 그리고 결국 퇴사 후 1년이 넘는 기간을 집이라는 동굴에 갇혀 나오지 못한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이 기억은 기간에 힘들었던 그 어떤 기억보다도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는 테이프가 반복되듯 돌아가기도 한다.

또 같은 시기 대학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긴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오해와 관계의 불편함이 더해져 더욱 괴로웠다. 한 때 평생을 같이 하고 싶고, 나의 장례식에는 꼭 와주었으면 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과 불편하고 복잡하며, 나를 한없이 가치 없는 존재로 끌어내려야만 다시 봉합될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선택한 최선은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를 지워야 하는 그 순간까지 정말 맞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나의 20대가 부정당하고 축적된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막막함은 정말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다. 전화번호들과 카톡을 지우고 나서도 컴컴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 혼자 앉아 머릿속 떠오르는 사람들을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하나하나 해부하듯 확인하고 있는 는 비참했다.




지금 깨닫는 것은...

한심하게 사는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심하게라도 살기까지 얼마나 힘을 내야 했는지, 마침내 배가 고프고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밖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최은영 소설, 아치디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 중)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관계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내야 했다. 정점을 찍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관계 혹은 지나간 관계 모두를 연연하지 않으며, 인간관계에 무게를 두지 않기 시작했다. 친구관계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이, 지연, 학연 등과 같은 정형화된 굴레를 벗어나 서로 존중해주며 즐겁고 재미있는 관계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코 무겁지 않은 관계를 지향하며 나의 시간과 공간에 예의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웬일로 나를 향해 웃어주는 '루키'


피해야 할 사람을 구분하고 부정표현보다는 긍정표현이 가지는 안정감을 체감했다. 아직도 나는 관계에 있어 위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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