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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Oct 23. 2020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달이 이끄는 대로 여수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수 장범준의 ‘여수 밤바다’ 뮤직비디오의 프롤로그다.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달이 아니라 흐린 날씨 구름이 이끄는 대로. 출발시간도, 숙소도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무계획 여행의 시작이었다.      

동행자도 없고 출발 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여행은 홀가분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되니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어디를 가야 하나 생각했다. '전주' 하면 생각나는 사람과 장소는 20대 시절 원광대 ROTC와 전북대 앞에서 함께 먹었던 김치볶음밥이다. 그리고 그 기억도 이제는 희미하다.


전주 무엇보다 한옥마을이 랜드마크이기는 하지만 경주와 강릉지역 박물관의 기억이 좋았기에 전주박물관을 기대했다. 어느 지역과 나라를 가건 꼭 진행하는 절차가 있다. 일단 마트 가서 여행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먼저 챙긴다. 그리고 여행의 첫 행선지로 박물관을 간다. 이 점은 굳이 염두에 두지도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이다. 마침 터미널에 내리니 어떻게 알았는지 다이소가 있었다.      


박물관을 자주 다니다 보니 볼거리가 많은 박물관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구 혹은 관광객이 많은 곳이거나 향토색이 진해 지역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특정지역 박물관은 전시품목도 다양하다. 굳이 기획전시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볼 것이 많다. 그러나 지역 박물관의 한계는 명확하다. 기본적인 보유 유물이 많지 않아 전시물이 많이 없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특색이 많이 없다. 어떤 유물은 왜 전시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모조의 색채가 강하거나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차라리 향토색 짙은 지역 유물과 내용들을 위주로 전시하는 것이 제일 좋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크다.  점은 영토가 넓은 중국 박물관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를 떠나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어찌 됐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박물관이 주는 적막감과 휑함이 좋았다. 평일이라 그랬을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나지도, 하지도 않았다. 필요도, 의미도 없었다.

혼자 하 여행에서 흔히들 무엇을 '정리'하기 위해 간다고 하지만 사실 생각의 정리가 그리 쉬울까? 어차피 생각은 잡을 수 없고, 또 난들 어쩌리.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여행은 그저 잘 걷고, 잘 보고, 잘 쓰면 되는 것이다.      


한옥마을로 향했다. 전주의 랜드마크는 과연 한복대여점일까 생각했다. 두세 바퀴를 도는 동안 '한옥마을' 이름에 걸맞은 한옥들을 찾기 힘들었다. 기본적으로 그 거리 있던 모든 것들은 한복 대여를 위한 것이라 해도 무방다. 1920~30년 경성시대의 복장까지도 대여를 다. 한집 건너 의류 대여를 하는 그 거리들의 끄트머리에 있는 보아도 좋고, 안 보아도 별 상관없는 전동성당을 찾아갔으나 때마침 수리 중이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숙소를 잡아야 했다. 난생처음 관련 앱을 깔고 숙소를 잡았다. 처음 만난 친구의 남편은 참 착하고 배려심이 많았다. 친구와 나를 위해 오고 가는 길을 운전해주었다. 아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친구 역시 남편에 대한 사랑을 모든 말과 행동에서 표현해주었다. 서로가 선한 영향을 받는 부부였다.


친구와 둘이서 기본 안주 잔뜩 나온다는 막걸리 거리로 갔다. 막리와 맥주 마셨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나누며 서로가 몰랐던 삶의 모습들을 슬쩍슬쩍 꺼내보였다. 40대는 그런 것 같다.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다 꺼내놓지 못하고 조금씩 천천히 가까워진다. 속도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이를 먹을수록 관계는 무게감이 더해진다. 나부터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나를 기다려 주었기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전주역사박물관 앞 포토존 문구

헤어지는 길에 친구는 나를 두 번이나 껴안아주었다. 첫 번째는 어설프게 끌어당겨졌고 그녀가 부족하다며 다시 하자 했을 때 나의 두 팔이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당겼다. 친구는 나에게 순진하다 했고, 나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다음날 서울로의 귀가 전 전통시장 안에 있는 청년몰에 들렸다. 가는 길에 보게 된 세월호 추모 천막과 소녀상이 아침부터 마음을 울렸다. 아픈 기억이기에 꺼내기 힘들어하는 그들을 도시 한복판서 공유하며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주시민들에게 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청년몰은 오전이라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았고, 해맑은 10대 소녀들이 그룹으로 사진을 찍으러 몰려다니고 있었다. 5천 원짜리 보리밥집에서 오랜만에 과할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전주는 이젠 원광대 ROTC와 김치볶음밥이 아니라 친구의 포옹과 홀로 걸으며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먼저 기억 날 것 같다. 그 기억만으로도 전주는 이미 나에게 따뜻한 지역임에 틀림없다.       

옛 그림 중에는 소원을 이뤄주는 영험한 동물들도 그렸다네요. 어서 조용히 소원을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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