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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Nov 23. 2020

누가 셋째 딸이 예쁘다 했던가?

나는 딸 4명 중 셋째 딸이다. 보통 딸 부잣집의 셋째 딸이 제일 예쁘다던데. 아쉽게도 나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큰언니와 둘째 언니에게 가려있었고 커서는 키 크고 긴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여동생이 집안의 얼굴이 되었다.  

새를 그려보다. #1. 날개는 짧지만 그래도 잘 날아간다. 새 두 마리

대학생 때 둘째 언니와 구로공단에서 당시 게스와 동급 레벨로 취급받던 마르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를 만드는 공장에서 미싱사들이 만든 완제품의 실밥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었다. 더운 여름 실밥을 따는 쪽가위를 얼굴 쪽으로 향하고 졸았던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밥을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주변에 일하시는 분들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아 언니와 수다를 떨며 작업을 하기에도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나마 그 지루한 시간들을 버티는 것은 점심시간과 오후에 주는 작은 요구르트 1병과 소로보 빵 간식이었다.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에게는 요구르트 2병, 또 어느 날에는 빵이 2개…


가만히 보니 미싱사 아저씨 중 한 명이 분명 언니를 더 챙겨주는 것이 아닌가? 조금 분한 생각마저 들었다. 도대체 나는 왜 안 주는 거지? 당시 궁금한 것을 못 참고 물어보았다. 아저씨가 그랬다. 언니가 예쁘다고. 나는 그때 깨달았다. 세상은 예쁜 것들이 대우받는 불공평한 곳이구나. 그렇다. 그 작은 요구르트 한 병이 언니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기억만 있으면 다행인데 지금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동네 남자애들이 큰언니와 둘째 언니만 부르고 나를 부르지 않은 적도 많았다. 언니들과 나는 불과 2살, 4살 차이!


시장에 언니들과 함께 가면 나만 친척이냐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친척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바빴던 시절이었다. 그 상황들은 어린 나이에는 나름 상처가 되어 진지하게 나는 주워온 아이가 아닐까 생각했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팬티도 물려주던 환경에서 굳이 아이 하나를 더 키우는 것 안 되니 주워온 것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아무튼 그런 과정들을 겪다 보니 나는 딸 부잣집 셋째 딸은 예쁘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셋째 딸인데. 내가 예쁘지 않으면 세상 모든 셋째 딸은 예쁘지 않다는 오류에 빠지고  것이다. 


나이를 더 먹고 나니 이제는 언니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매들 중에 가장 키가 크고 오목조목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동생이 뙇 등장했다. 나이 차이로 껴주지도 않았던 여동생이 이젠 4명의 자매 중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예쁜 사람으로 불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셋째 딸은 외모로 승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딸의 미모에 대한 잘못된 오해의 시작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원흉은 ‘최진사댁’에서 시작되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잘못된 오류는 ‘아랫마을 칠복이’가 그저 부인을 얻고 싶었다는 것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미모의 셋째 딸’이 우선시 된 것이다. 만약 예쁘다고 소문난 것이 첫째 딸이면 어떻게 되었고, 둘째 딸이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새를 그려보다. #2. 사이좋게 모이를 나누어 먹는 새 세 마리

나는 내가 예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인정한다. 화장을 예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인정하고 나니 내 마음 알아주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그 마음으로 편하게 산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저 자매들과 함께 곱고 예쁘게 늙어가면 그것으로 되었지 싶다. 삶의 궤적을 공유하고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는 자매들 이제 시샘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고마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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