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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Jan 04. 2021

말도 농사다

본인은 생각보다 말을 조심하는 편이다. 내가 하지 않은 행동이라도 소수 몇 명 오지라퍼들의 왜곡되고 변질시켜버린 언어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뿐 아니라 일을 하면서부터는 업무든, 개인적인 것이든 그냥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그리고 매우 조심한다.      


복지관은 5월, 9월에는 행사가 몰려있다. 특히 나들이나 마을 잔치의 경우 지역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들이 와서 인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5월 나들이 때 일이다. 출발 전 250명이 가까운 어르신들의 인원체크도 힘든데 그분들의 인사를 챙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과정도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활동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각하는 어르신들과 간식 챙기는 것이 더 바빠 양가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나들이가 있고 며칠 후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그런 상황에 불만이 생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직원 식사는 보통 경로식당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진행된다. 그런데 뒤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 중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며 직원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체크하고 가셨다. 그 이후 어르신들과 오며 가며 인사를 드리면 기분 탓인지 살짝 아래위로 보시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 뒤 밥을 먹을 때는 절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혹시나 업무적으로 필요하여 이야기가 나와도 뒤를 돌아보며 어르신들이 어느 정도 위치에서 식사를 하시는지 확인한 후에 나누었다. 이 경험은 점심시간 나만의 제1의 원칙이 되었다.     

비단 정치에만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바자회 때 생긴 일이다. 직원이 급하게 불러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로 가보니 자동차 한 대가 행사장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행사장 앞 주차에 화가 났다. 엄청 바쁜 시간대로 여유가 없었다. 차 주인을 찾은 후 “여기에 차를 대시면 곤란한데 바로 빼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목소리를 높여 말을 ‘던졌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관장님이 바로 뒤 테이블에서 휴대폰으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뿔싸! 정말 아뿔싸가 속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역주민에게 화를 내는 그 순간 모습만을 내 모습 전체로 기억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주차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 생각했다.


의식하지 못하는 내 작은 행동 역시 누군가는 보고 있다. 또한 그에 따른 책임 역시 나에게 돌아오니 어디에 있더라도 조심하자고. 이건 차라리 사람들이 내 욕을 앞에서 하는 것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말의 무게는 비단 업무에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말은 정말 무섭게 번진다. 얄밉거나 정말 인성이 좋지 못하면 ‘뒷담화’도 할 수 있다. 다만 그 ‘뒷담화’를 어느 장소에서, 누구에게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몇 번의 경험 이후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늘 주제는 날씨, 뉴스, 연예인, 계절이다. 가장 보편적이며, 화제성이 있는 주제만이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0년 신년운세에서 그랬다. 말을 더욱 조심하라고 그래서 그런지 정말 더 많이 조심한 한 해였다. 그러나  맞춰버리고 말았다. (평상시에는 잘 맞지도 않더니...) 하지도 않은 상황과 행동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경험한 바로는 소문과 말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런 말을 만드는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음은 물론 앞뒤 사정에 대한 이해가 짧아 통찰력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너는 사람 잘못 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작전을 짠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 끝에 가장 빠른 해결방법은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해결하는 쪽을 택할 때가 많다. 말을 돌려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바로 찾아가거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경우에는 상사에게 이야기하여 삼자대면까지도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그런 경우 대부분 그들은 본인들의 한 말에 대해 당당하게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책임을 미룬다. 그러나 그 모든 결과는 결국 그들의 몫이다. 최악의 경우는 원하지 않는 비자발적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자신을 몰아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부정적인 타인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할 틈이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사람들에게 ‘그 개인 한 명만 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사람 뒤에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가장이라면 그 뒤에 숨어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 딸 아들이라면 부모님들과 가족들을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그들도 너만큼 가족과 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사랑받고 싶은 개인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스스로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그 습관들을 계속 몸에 넣으려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해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사실 새로운 해라고 달라질 게 있을까 싶다. 큰 변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작은 습관, 작은 행동, 작은 만남이 모여 큰 변화가 온다.


그렇듯 말도 어떤 씨를 뿌리는지에 따라 인생이 흉년이 될지 풍년이 될지 달라질 것이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에 따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본인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고리타분한 생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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