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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Jan 04. 2021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대학 때 동아리 사람들과 빙 둘러앉아 밤새 술을 자주 마셨다. 2학년 어느 날 새로운 얼굴이 동아리방으로 왔다. 처음 보는 복학생 선배였다. 그 선배와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20대 초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인 연애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그 후 20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남자선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했던 말은 남아있다. 그 날 술자리 주제는 “헤어져도 쉬지 않고 연애를 잘하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선배가 그랬다. “연애를 끊기지 않고 하는 사람은 그 ‘따뜻함’을 알기 때문이야.”라고.     


시간이 지나 결혼하는 친구, 이혼하는 친구, 나처럼 혼자 지내는 친구 등 모두가 다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 친구들 중에는 결혼을 한 친구도 있었지만 종교, 집안, 경제 등의 이유로 상대방 바꾸며 모임에 나타나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 와중에 나는 천진난만한 마음과 얼굴로 ‘남자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죠?’라며 그렇게 친구들의 남편 혹은 남자 친구들과 의형제를 맺으며 잘 지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난임으로 시험관을 통해 어렵게 아기를 가진 후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나는 이 시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 남편은 '최초'로 나에게만 그에게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났음을 말했기 때문이다. 한 달을 끙끙 앓았다. 아무리 그에게 내가 편했어도 나는 아내 친구였다. 정말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남편이 진심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나에게 말한건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가족상담, 연애상담의 시작이었구나 싶다.     

그 후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직업을 가지다 보니 여러 형태의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결혼도, 연애도 다 사람 사는 이야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동전에 양면이 있듯 사랑에도 양면이 있다는 말로 위로와 안심을 상대방에게 건네기도 했다.     


일상을 공유하고 네가 가진 장점이 너무 좋다 했던 그 이야기들도 헤어지고 난 후 어쩌면 그 장점이 너무 지겨워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아침 모닝콜부터 저녁 잠들 때까지 통화와 카톡으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내 사람이 되어준 그 사람에 대해 너무나 감사해하던 그 마음이 어느 날부터 그 존재를 부정하고,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싶어질만큼 미워질 수 있다는 생각.     


너무 사랑해서 헤어졌다고 말하며 사랑을 애달파 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 이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좋아하는 음식, 음악, 취미, 책, 공간 등을 알기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그 최선이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집착으로 비치거나 이별 후에 온통 생채기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하는 과정이 유지되지 않은 상태라면 남자 선배가 말했던 그 ‘따뜻함’은 그저 나와 상대방의 눈속임일 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며 스스로 발달과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보통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 진행되는 연애는 좋은 기억을 남기기 어렵다.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버리면 그 사람의 목소리, 얼굴, 모습이 온전히 마음에 남아 모든 사람이 상대방으로 보이게 하는 눈이 멀어버리는 눈속임 현상까지 생겨버린다. 그러나 그 좋아하는 그 과정을 힘들게 끊어야 하는 상황은 언제든 발생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말해준다. 그 눈속임 현상도, 다른 누군가를 담아두기에 굳어버린 마음 그릇도 모두 다 또 다른 누군가를 더 솔직하며 과감하게 사랑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과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임을 잊지 말라고. 뜬금없이 하나 더 추가하자면 겨울의 사랑이 여름의 사랑보다는 덜 아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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