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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Jan 12. 2021

잘 버티기 위한 조건

삶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욱 그렇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진 시기 탓도 크다. 또한 이 시기에는 새로운 시작과 환경을 아무리 원해도 한걸음 내딛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 숨 막힐 정도다.     

작년, 올해 모든 경가 꽝꽝 얼어있어 취업이 매우 어렵다. 사회복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사의 이직이 높은 시기는 보통 2월 구정과 9월 추석 명절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동 자체가 얼어 있다. 12월 말 보통은 기관에서 1~2명의 퇴사자가 있기 마련인데 올해는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코로나가 끝나면 대대적인 이동이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러나 코로나 역시 백신이 나온다 한들 집단 면역이 되기까지 다시 2020년 2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기에 신중 생각 정리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일을 중단할 것은 아니기에 다시 알아보고 있지만 적지 않은 나이와 쌓여있는 경력만큼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기간에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다. 연락이 오고 가지 않았던 그 시간 속에서 누구는 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누구는 직장생활의 힘듬으로 그만두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고, 누구는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져 맞벌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더 성실하고, 평한 삶을 위한 장치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본인이 정한 기준에 부합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잘 세팅된 직장, 가족, 돈, 건강 등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삶은 계속 흔들리고 있으며 평균을 맞추기 위해 에너지를 2배 이상 쏟아가며 부단한 노력을 한다.

20대 초반, 40대 중반의 언니와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보았던 단식원에서 만난 언니였다. 그 언니는 디자인 회사에 잘 나가는 중견급 디자이너였다. 성격이 잘 맞아 자주 만났고 언니는 나를 잘 챙겨주고 예뻐했다. 밥을 먹어도 언니는 자기가 사야 하는 거라며 계산 카운터에 서 있는 나를 늘 밀어냈다. 또한 언니에게 응석을 부리며 이것저것 푸념을 늘어놓으면 본인의 경험을 다양하게 나눠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대입구 앞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언니와 밥을 먹다가 언니가 회사를 그만둘 생각임을 밝혔다. 그때 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언니는 이 늙은 나이에 결혼도 안 했고, 거기에 모아둔 돈도 없는데 직장까지 관두면 언니는 뭐해 먹고살까? 안돼. 무조건 말려야 해. 무조건 말리는 게 답이야.’라는 것이었다.


“언니, 그러지 마요. 조금 더 다녀봐요.” 라며 똥그랗게 눈을 뜬 나에게 언니는 “지금 그만두는 것은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도 있지만 가장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그만두는 거야.”라고 말했다.


일단 “나를 위해 그만두는 거야.”라는 그 말의 뜻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나는 언니가 회사를 그만두면 '큰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다. 삶은 궁핍해질 것이고,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언니는 고립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내가 지금 그 언니의 나이가 되고, 언니와 같이 직장을 관두었으며, 벌어둔 돈도 없다. 아마도 언니와 만났을 때와 같은 20대 초반의 내가 나를 본다면 제정신 아니라는 소리를 하며 엄청난 힐난과 비난을 퍼붓고 있을 것이다. 더 솔직히는 그 언니에게는 예의를 갖춰 ‘안된다며, 조금 더 버텨보라’ 했겠지만 스스로에게는 더 가감 없이 “미친년”이라며 욕을 한바탕 했겠다 싶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직장생활의 공백이 한 달이라도 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고, 특히 40대 넘어 직장을 다니지 못하면 엄청난 결핍에 시달리며 삶이 쪼그라들 것 같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 조조하고 안달복달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인생 낙오자도 아니었고 큰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순간순간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깨달은 것은 삶은 그저 잘 버티기라는 생각이 든다. 버틴다는 것은 물론 삶 자체를 너무 고되게 느껴지게 하는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더 포괄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 듯하다.     

'버티기'를 바둑용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위협이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어려운 국면을 참고 배기며 포기하지 않고 강하게 맞서서 거룬다로 해석한다. 야구 용어 풀이에서의 “잘 버틴다”는 절박한 위기에서도 상대하는 타자를 침착하고 효과적으로 제압하여 근소한 리드를 잘 지켜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자기 몫으로 주어진 삶을 잘 ‘버티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삶에서의 ‘큰일’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주어 삶 속에서 스스로를 방치하거나 구박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부족한 것을 채우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깨닫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올해 즐겁게 '버티기' 위한 제1의 원칙을 세웠다.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자주 하며 말로서 덕을 쌓는다."이다.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기 위한 힘내기'에 한몫 보태주며 나 역시 잘 버티기 위한 장치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것이 잘 살아내기 위한 ‘버티기’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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