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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Jan 17. 2021

웰다잉을 위한 선택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작은 모임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그 단체에서 만난 선배가 창업을 했다. 개업하던 날 나보다 1살 어린 선배 남동생을 처음 보았다. 남동생은 염색을 하지 않은 옅은 갈색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선배 막내 남동생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같은 나이 또래 여자애들에게 사귀어보라며 자랑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올 때 힘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웃음이 예쁜 남동생이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가볍게 한잔 마시러 들린 술집에서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었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집으로 귀가하던 중에 지갑을 술집에 놓고 와 혼자 찾으러 갔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 술집이 있는 빌딩 뒤 주차장에서 추락한  발견되었다고 했다. 길고 긴 뇌사상태장기간의 입원이 시작되었다.


너무 애통하고 안타까웠다. 그때 나는 그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먼저 떠올랐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CCTV많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지만 유일한 목격자였던 그 빌딩의 경비원은 입을 열지 않았다. 동네의 조직폭력배가 개입된 것 같다고 선배는 어렵게 말했다.    

 

그 사이 선배는 동생의 장기기증을 고민하고 고민했으나 오늘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 애통함에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났고 그 힘든 결정의 끝을 냈다. 그러나 병원에서 거절했다고 했다. 뇌사 기간이 너무 길어 힘들다는 답변이었다.


동생을 보내던 날 단체 사람들과 장례식장으로 갔다. 선배는 울지 않았다. 그 사이 선배가 창업했던 가게는 폐업을 했다. 함께 밤을 새우며 선배가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 중 한 가지는 ‘후회’였다.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바로 ‘장기기증’을 했어야 했다고. 그 과정을 통해 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줬어야 한다고.     


공생과 상생을 위한 직업을 가지기는 했어도 진심으로 남과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던가에 대한 생각은 꾸준히 있었다. 후원도 늘 그랬다. 다녔던 복지관들에 일정 금액을 헌금하듯 want가 아니라 must로서 CMS로 자동이체 걸어놓았다.     


살아가면서 내내 해야지 했던 일이 두 가지 있었다. 어쩌면 그 생각의 시작은 선배의 후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선배의 후회는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나의 존재 자체는 미약하고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세상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일까 늘 머릿속에서 생각해왔던 일이다. 그것은 웰다잉을 위한 선택이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타인과 나를 위한 선택으로 장기기증과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이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죽음을 이야기하기는 나이가 젊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더 이상 머릿속에 더디 두기에는 그저 시간만 보태질 뿐 언젠간 할 일이다. 사람들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 때 진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등 모든 삶에는 순서가 늘 정해져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서 있는 축복된 삶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삶들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렇기에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시야 넓어졌지만 마음이 너무 빨리 늙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치과를 다니고 있고, 잠도 지칠 만큼 많이 잔다. 매주 금요일의 청소가 2일 주기의 청소로 바뀌었으며, 꾸준히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의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특별히 삶에 큰 이슈가 없는 보통의 삶이다.


그러나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살아온 날들의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더 생생하 힘차게 살아가며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렵지도 않은 일을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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