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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Feb 01. 2021

반려견에게 보내는 사과편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다. 엄마는 어느 단독주택 담벼락을 지나가며 ‘이 집에 강아지가 태어났는데 데리고 올 거야.’라며 말했다. 마당 있는 집에 살던 때였다. 강아지는 처진 눈에 베이지색 털을 가진 뱃살이 통통한 강아지였다.


생전 처음 보는 귀여움에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온통 내 차지였다. 이름도 내가 지어주었다. 당시 섬유린스 중 포장지 겉면에 귀여운 곰돌이 이미지가 있는 ‘포미’라는 제품이 있었다. 그 곰돌이의 푸근한 이미지와 루키가 너무 닮았다. 망설이지 않고 이름을 ‘포미’로 정했다.      

포미는 나에게 정말 좋은 친구였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었다. 아침 기상부터 자기 전까지 포미와 종일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준 동물 친구가 있었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포미가 없었다. 여기저기 포미를 찾는데 언니가 말했다. 포미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당시 포미는 너무 어려 목줄을 하지 않았는데 길 건너편 누군가 포미를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길을 건너던 포미가 차에 치였는데 즉사했다고. 


억장이 무너졌다. 믿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날부터 포미를 부른 ‘그 누군가’에 대한 원망, '처음만 슬퍼해주는 것 같은' 가족들에 대한 원망, ‘조금 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으면 되는데’라는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사방을 채웠다.


처음 일주일은 통곡으로, 그 다음 한 달은 말을 잊어버림으로, 그 다음 몇 달은 웅크린 채로 살았다. 엄마 처음에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다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되지 않 다시는 개를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런 포미를 생각하면 마음이 쩌릿하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고 나서 30년이 지나면 환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우리 포미도 좋은 사람으로 환생했을 것이다. 나의 기도가 통했다면.      


루키는 7년 전 우리 가족에게 왔다. 루키의 이름도 내가 지어주었다. 행운의 남자.      


막내 조카가 동물을 너무 좋아해 큰 언니네가 입양했다. 그러나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 막내 조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심한 동물 털 알레르기였다. 동물 털만 닿으면 얼굴에 온통 붉은 반점과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이 됐다. 일주일만 임시로 맡겨졌던 루키는 그렇게 엄마의 막내아들로 새 식구가 되었다.     

 

루키는 포미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사납고 예민하다. 세게 물고 엄청 많이 짖는다. 싸움닭이 환생한듯 했다. 그런 루키와 나는 앙숙이다. 루키에게 까불다 손가락과 코를 물린 적도 여러 번이다. 서로 피를 본 사이다. 랑받는 누나로 잘 지내고 싶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서운함의 무게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지만 나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내 무게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루키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식어버렸다. 하여 내가 그나마 그를 위해 하는 일은 정기적으로 이발하러 갈 때 운전기사, 배변패드 구매 대행, 마트에서 그가 아닌 내가 먹고 싶은 반려견용 간식구매, 그리고 루키와 동생과의 오붓한 산책에 말동무로 동행해주는 것뿐이다. 심지어 루키는 나와 둘이 가는 산책도 거부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간 적도 몇 번 있다. 왜 루키는 포미처럼 나를 좋아하고 반겨하지 않은 것인가. 서운하고 미웠다.       


며칠 전 루키가 다 늦은 저녁시간 갑자기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퇴근길이 시작된 그 밤에 동물병원갔다. 문진과 엑스레이에서는 십자인대가 파열된 것 같다고 했다. 수술이 안 되는 병원이라 동생이 백방으로 알아보고 노견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갔다. 그 병원에서의 진단은 십자인대와 슬개골 파열로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다. 그리고 한쪽 다리도 몇 달 후에 수술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생소한 십자인대개골 때문에 고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끔 루키의 꽉 다문 입을 보며 저 아이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까? 사람처럼 목소리를 내면 어떤 억양일까? 제일 처음 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평생 말을 하고 살 수 없다 하더라도 일생에 딱 3번의 기회라도 주어지면 어떨까? 등등 다양한 생각이 한꺼번에 든다.      


수술 후 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다는 동물병원의 염려로 갑작스러운 퇴원을 했다.  갑자기 포미 생각이 났다. 포미는 포미고 루키는 루키였다. 미안했다. 루키에게 포미를 기대한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루키가 서운하게 했던 것보다는 내가 루키에게 철없이 까불고 약 올렸던 기억이 더 컸다.

루키는 이제 깁스를 하고 6주간 꼼짝없이 집에 갇혀 앉은자리에서 대소변을 봐야 한다. 화장실 분리가 철저한 그에게는 정말 고난주간이 될 것이다.      

이제 내가 할 것은 아마도 루키가 병원을 오갈 때 운전을 해주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픈 루키를 보며 생각해본다. 있는 그대로 루키의 성격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반려견이 가족이 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마음으로부터 반려견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잘 살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되는 첫걸음인 듯 하다.      


"루키야 그 동안 너가 나만 보면 너무 으르렁 거리고 짖기만 해서 미웠어. 그리고 내 딴에는 너와 친해진다고 산책도 같이 가보려 했는데 여러차례 거부해서 상처받은 마음에 나도 너에게 등을 돌려버렸지. 오늘 아픈 너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커지더라구. 루키아 미안하다. 내일 나면 덜 어색할 수 있도록 글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어. 내일은 만나서 직접 말할거야. 나부터 너를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볼게. 내일 만나자. 안녕,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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