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결핍(1)

촌스럽다는 말에 눈물이 왈칵 났다

by 유서아

<3-1. 에피소드>


결혼준비를 할 때였다. 오빠와 나는 사진 찍는 걸 쑥스러워해서 안 찍고 싶었지만..!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갈 사진이 있어야하긴 해서 서울숲에서 야외스냅을 가볍게 찍기로 했다.


뭘 입지? 나는 소문난 실속파라 촬영 두세 시간을 위해 드레스를 대여하는건 생각도 하지 않았었고 나중에도 단정하게 입을 수 있는 원피스를 사기로 했다. 촬영 때도 입고 돌잔치 때도 입겠다고 다짐하며!


백화점 브랜드를 아무리 검색해 봐도 딱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찾지 못했는데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FLOWOOM이라는 디자인 브랜드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단정하면서도 뭔가 러블리함이 적당히 있는...! 내가 찾는 스타일이었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입고 싶은 디자인 1-5위를 정해놓았다. 대충은 정해뒀지만 오빠랑 같이 보면서 고르고싶어서 밖에서 저녁을 먹으며 쭉 보여줬다.


“이거는 넥라인이 이렇고, 길이는 요정도야..! 이거는 리본이 여기있고, 크림색이야! 어때 보여...? “


내가 골라놓은 5개를 쭉 보던 오빠는 “다 괜찮네~ 네가좋아하는 분위기들이네! 그렇지만 나는 그중에 이 넥라인은 좀 촌스러운 것 같아. “


응!?!?!? 촌스럽다고!?!?!?

오빠가 촌스럽다고 말한 그 옷은 내가 1순위로 골라놨던 원피스였다. 오빠는 내가 1순위로 골라놓은 옷인지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눈물이 왈칵쏟아졌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화가 나서도 속상해서도 아니라 수치스러움이 확 몰려오는 것 같았다.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까 눈물만 줄줄 흘렀다. 나도 내가 이상했다. 눈물은 한동안 그치지 않았고, 먹던 음식도 대충 마무리하고 계산하고 나왔다. 당황한 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내가 울어버리니까...


“오빠,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촌스럽다는 그 말이 날 되게 아프게 한 것 같아. 나 눈물이 계속 나. 울 시간이 좀 필요해. “


길거리 한복판에서 오빠는 말없이 안아줬고 내 얼굴을 옷 속에 넣어줬다. 나는 그 속에서 좀 더 울었다.


그러고는 다음 목적지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한참 또다른 이야기를 하며 걸으며 환기를 좀 했던 것 같다. 오빠도 왜 눈물이 났는지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그 옷이 촌스럽단 말이 나에겐 이렇게 들렸었다.


너의 안목이 촌스러워. 네가 촌스러워. 나는 부산 촌동네 사람이야. 나는 부유하지 않아. 나는 초라해


내가 그렇게 애써서 벗어나고 싶었던 부산, 우리 집.

벗어나고 싶었던 내 시작점에서 이제는 꽤나 멀리 와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촌스럽고 부유하지 않은 초라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게 나를 참 아프게 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예뻐 보이고 싶은 대상인 남자친구한테 촌스럽다는 말을 들었으니


내가 부유하지 않고 마냥 화목한 가정의 딸이 아닌 사람인 걸 감추고 싶었는데 그걸 들킨 것 같아서, 나의 초라함을 다 파고들어 본 것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그때의 사고 흐름은 지금 돌이켜보면 왜곡이었지만, 그순간의 나는 너무 진짜였고 너무 아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사고의 흐름이 쏜살같이 그런 식으로 연결되었다. 결국은 내 자격지심이지 않았나 싶다.


며칠 뒤에 우리는 FLOWOOM 쇼룸에 가서 골라뒀던 옷을 입어봤다. 그 논란의 촌스러운 넥라인의 원피스는

실제로 입어보니 원단도 빳빳하고 라인이 나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조금 촌스러워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재밌는 건, 내가 골라갔던 1-5순위 원피스는 실제로 입어보니 다 마음에 들지 않았었고 점원분이 추천해 준 새로운 원피스가 맘에 들어 그걸로 구입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촌스럽다’를 금기어로 정했다.

오빠는 나에게 예쁘다, 세련됐다, 스타일이 좋다 등등의 말을 더 자주 해주는 것 같다.


더 이상 촌스럽다는 말이 아프지 않다. 그 옷이 촌스러워 보인다는 거지 나랑은 상관없으니까.

나는 예쁘고 세련된 사람이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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