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가족이란 이름으로





열심히 나이를 먹었는데, 아직 17살.

"지겨워."를 입에 달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이런 말만 내뱉으니까 반 애들이 다가왔다가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애늙은이 같아서

재미없다며 멀어져 간다.



하지만 나한테도 그럴싸한 이유는 있다.


호적메이트. 7살짜리 김명훈


하나뿐인 그 대~단하신 손자님.


김명훈을 썩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김명훈’을 싫어할 뚜렷한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난, 생각할 줄 아는 괜찮은 인간이니까.


그냥. 뭐…


엇비슷한 비율로 동일한 두 사람의 유전자와

피가 섞여 태어난 게 그 애 잘못은 아니니까.


무튼 그래서 하루빨리

이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다.

내게 남은 건 3년의 기다림과 엉망이 된 마음뿐.

그 시간만 버티고 집을 벗어나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는 핑계로

자취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럼 더 이상 장녀라는 타이틀에 묶여서

김명훈을 모시는 시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3월부터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

악착같이 공부해서 '인서울'을 하겠다는 목표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나름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가방을 챙기다가

뭔지 모를 느낌에 창문을 봤다. 아무것도 없다.

늘 그렇듯이, 변하지 않는 감옥 같은 풍경뿐.


'이런 걸 기시감이라고 하는 건가…?'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개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자,

수풀 속에서 모깨비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명희를 관찰한다.


모깨비가 보는 명희는 당연한 것처럼

영사기에 영화 필름을 걸치듯이,

기억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까지

‘불행의 역사’를 되감아

마음 한편에 틀어놓고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잠들기 전 챙겨놓았던 것들과 메모를 비교하며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한편에 재생 중인 불행의 역사는

슬로모션이 걸린 듯,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상영한다.


웃음이 없는 오늘부터 어젯밤,

어제 아침을 지나 작년의 어느 날,

그 전의 어느 날들을 띄엄띄엄 건너 11살로 내려간다.

11살부터 천천히 웃음을 되찾아 가는 모습들을 지나,

5살부터 태어난 직후까지는 밝고 명랑한 표정들만 가득하다.



다시 테잎이 재생되고,

5살까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6살 무렵부터 동생이 태어난 11살까지

해를 거듭할수록 웃음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으로

이 안온한 일상에 있던 모두를 제치고

등장 빈도가 점점 많아진 시점부터

어렴풋이 불행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김명훈이 태어난 후 불행은 확실해졌다.


어느 밤엔,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난 운이 없다고.

어떻게 21세기에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해?


이 상처는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서

무슨 수를 써도 아마…

평생 지워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은

진짜 상담 내용 중에 인정하기 싫은 최악이었다.


재수도 없지. 근데 뭐… 별 수 없기도 하니까.

이 집에 태어나는 걸 내가 선택한 적? 없고.

여기보다 훨씬 더 나쁜 환경? 숨 쉬듯이 많으니까.

그나마 사업하는 집이라 경제적 혜택은 누리고 있으니,

정신적 결핍 정도는 견뎌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기까지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 이래서 애늙은이라고 하는 거구나.



근데 나라고 해서, 한숨 쉬는 내가 좋은 건 아닌데.



한숨조차 내쉴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눈앞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면서

귓가에, 손가락에, 팔꿈치에 맥박이 뛴다.

처음엔 그냥 아픈 줄 알았고, 이제는 안다.

중압감, 짓눌린 억압감, 그리고 지지 밟힌 자존감.


난 지금 어딘가 확실하게 고장 나 있다.



가방 끈을 붙잡고 2층 계단을 내려와 주방을 보니

종종걸음으로 아침을 차리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 몸도, 성격도 참 약한 사람이라서

가부장적인 시댁의 강요를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큰 분란은 고사하고, 작은 소란을

일으킬 힘조차 없는 너무 약한 사람이니까.


한 번도 엄마 편인 적 없던 무심한 인간과의 삶이

과연 살만 했을까? 아니었겠지.

그러니 꼬장꼬장한 시어머니에 맞서

딸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마음의 근력 같은 건 감히 가질 수가 없었겠지.



시집살이에 늘상 우는 듯 풀 죽은 엄마를 보고 있으면,

명치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말 그대로 속이 답답해 미칠 것만 같다.

엄마의 남편은…

집에 있는 모두에게 큰 관심이 없다.


왼쪽 가슴 어디쯤 있을 마음 한 귀퉁이가 욱신거린다.

대체 왜… 결혼했을까?

내 기억이 존재하는 처음부터



늘 일, 일, 일.



날 왜 낳았을까?

자식으로 생각하기는 할까?

한동안은 엄마의 사탕발림에 속아

매일 밤 다정한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잠들었다가,

한 톨의 애정도 없는 어제와 같은 아침을 지나면

아문 적 없던 상처에

매일 밤 소금이라도 뿌린 듯 너무 따가워

이불속에 숨어 숨죽여 울었다.


심장이 터져 차라리 죽고 싶었던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단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입안에 피맛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생각의 가속은 브레이크가 없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지,

내가 뱅뱅 돌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정상적이지 못한 날, 조금이나마

현실에 발 붙일 수 있게 하는 건

손목에 흔적을 남기는 일.

별로 어려울 게 없다.

그저 피부를 긁어낼 수 있는 틈만 생기면

계속해서 벅벅 긁으며

정말로 어려울 게 없는 일이다,

거짓말을 진심인 양 속닥여본다.



마음에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자기혐오와 인간불신,

더럽고 추잡한 감정을 떼내려 애쓰는 중이라고.

하지만 금세 또 연약하고 말랑한 마음의 둑이 툭, 터져버린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이 집에 필요 없는 애다.

차라리, 자식이 간절하고 간절한

난임 부부가 내 부모님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니, 차라리 애를 낳을 수 없는 부부에게 입양되었다면,

조금은 사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혼자 잘 크는 애도 많다던데,

나는 왜 이렇게 사랑을 구걸할까…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며 다 밀어내다가도

누군가 다정한 말 한마디만 건네와도

심장이 터질 듯이 기뻐져

온 마음을 다 나한테 달라고 감당 안 될 생떼를 쓰고

그렇게 또 내게 질려 떠나는

뒷모습만 보며 하염없이 울게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고 갔다.


‘친구는 엄마가 아냐.’



난 그냥 한 움큼 사랑이 고팠을 뿐인데,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라다

정신 차려보면 계속 같은 엔딩이었다.


구제불능 애정결핍인 걸까?

늘 듣는 말처럼, 나는 계집애라

당최 쓰잘데기가 없어서 이 모양인 걸까?

끊이지 않는, 답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마구 헝클어버린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미칠 것 같은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을 텐데.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그 사랑 누구한테 받을 수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내 쓸모를 증명해 낼 수 없으면

난 존재 자체가 사회악 아니야?

내가 이렇게 숨 쉬어도 되나? 나, 살아도 되는 건가?

엄청난 누군가가 태어날 자리를,

나 같은 게 잘못 차지해 버린 건 아닌가?




근데 이미 태어난 걸 어쩌겠어, 살아야지.

억울해서라도 살아야지.

그렇게 또 한 번, 왼쪽 가슴을 도닥인다.


언젠가는 내 마음에도 산들바람이 불까?

이토록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남이 아닌

피와 살과 뼈를 물려준 아빠의 엄마, ‘할머니’였다.

모깨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지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17살은 한창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진로와 진학 문제로 부모님과 의견다툼도 하며

사춘기를 제대로 겪어야 어른으로

잘 성장할 수 있는 시기인데…


명희의 할머니는, 그 본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고약한 시절을 악착같이 살아낸-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래서 본인의 역성을 들어주는 아들을 등에 업고

그 시절 살았던 모든 큰 딸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은 하나도 없고

그저 이 집안의 큰 딸, 명훈이의 누나로만 살기를 바라는 양

하나부터 열까지 다 명희에게 명훈을 책임지게 만들었다.


엄마도 있고, 명훈도 이제 조금 커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는데도

밥상에 같이 앉으면… 명희는 반찬을 훑어

생선의 뼈를 발라내 명훈의 앞에 놓아주어야 했다.


“어이구 내 새끼, 내 손주~” 하며

아주 당연하게 할머니는 명훈의 숟가락에 생선살을 올려줬다.


가만히 보다가 동공이 풀리며 사물이 흐려지고

마음도 흐려지는 걸 느끼며

매번 답답함에 찬밥을 물에 말아먹었다.



나도 돈가스, 소불고기, 계란 프라이 좋아해요.

명훈이가 먹다 남긴, 남은 찬부스러기 주워 먹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해요.



‘선생님이 먹는 걸로 서럽게 하는 거 진짜 잘못된 거랬는데…’



밥 먹고 난 뒤 엄마와 나는 과일을 깎는다.

김명훈이 잘 먹으니까.

굳이 내 왼손잡이를 고쳐 오른손으로 과일을 깎게 했다.

엄마가 없을 땐 "네가 엄마야"

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되풀이하며-



오늘도 이 가족에게서 한 걸음 더 뒷걸음질 쳤다.

이대로 계속 시키는 대로 살면

진짜 무슨 노예 취급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밤이면 밤마다

잠은 오지 않고 걱정만 잔뜩 몰려왔다.



딸은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야

결혼을 잘한다고 하던데,

아빠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던데…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날 바에야

혼자 사는 삶이 훨씬 덜 힘들 것이 분명했다.

결혼은커녕,

제발 이 빌어먹을 집구석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만이 그렇게 명희의 평생소원이자 꿈이었다.



창문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민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 계속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음속에는 오기와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나다운 삶을 살고 싶어.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고.



하지만 현실은? 엉망진창.



밤이 되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것 같아서

조용히 책상의 조명을 가장 어둡게 켰다.

책상에 종이를 꺼내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려본다.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며,

상상 속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온 모깨비가 보여서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림 속에 모깨비는 나를 따라다니며,

내 어깨에 짊어진 걱정을 하나씩 덜어주었다.

그림 속에 나는 웃고, 노래하고, 춤추었다.


상상 속 세계에서는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언젠가는 이 모든 걸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더 공부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겠다고 다짐한다.


툭 툭 소리가 나서 생각을 멈추고 보니

그림 위로 눈물이 후두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종이는 울기 시작했고,

나는 울며 웃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며,

어젯밤, 조금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 짐을 싸서 가출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대화였다.

엄마께 친구들이 다 학원을 다녀서

나도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게

다 끝나기도 전에 대뜸 소리를 버럭 지르며-



“기집애를 중학교 졸업 맞게 해 줬으면 됐지,

허투루 대학 문턱 밟을 생각은 하지도 말아.
자고로 옛날부터 큰 딸은 살림밑천이야!”


/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있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하는 대로 취업해라.

벌어서 명훈이 뒷바라지나 하다가

시집이나 가면 되지, 무슨 기집애가

쓰잘데기 없이 공부를 한답시고 설쳐~

큰 일은 남자가 하는 거야, 얘.”



일말의 아주 작은 기대마저

갈기갈기 찢는 말이 서슴없이 들려왔다.

그 순간, 머리가 차게 식으면서 몸이 저절로 일어나 지더니,

덜덜 떨리는 걸 간신히 걸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뒤에서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대답도 않고

방에 들어가는 게 어느 나라 예절이냐며,

버르장머리 없다고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도,

발을 동동거리며 명희야 하고 부르는 엄마도,

눈만 꿈뻑이며 눈치 보면서도

밥을 우물거리던 김명훈도.


정말

아무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정말로 부서지기 직전의 나를 지켜야 했다.

나를 산산조각 내고 영혼까지 파괴시킬 게 확실한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집을 벗어나 24시간 찜질방에 도착했고,

어안이 벙벙한 걸 계속 다잡으며

겨우 수면실을 찾았다.



온돌바닥의 따뜻함을 등으로 받아들이며,

머리맡 바구니에 잘 개켜져 있던 담요를 꺼내 덮고

잠깐 숨을 쉬었다. 비로소 제대로 숨이 쉬어졌다.




그대로 선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모깨비를 만났다.

꿈속에서 모깨비와 함께 서울의 번화가를 거닐었다.

내 미래인 듯, 나이가 든 나는 높은 빌딩들 사이

어느 건물 안에서 동료들과

모깨비와 함께 브레인 맵 회의를 하며 웃고 떠들었다.

오랜만에 평화를 찾은 듯… 했다.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모깨비가 귓가에 속삭인 말에 눈을 떴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밤을 지나

어슴푸레한 새벽이었고, 수면실을 나서 보니

작은 조명을 제외하고는 불이 다 꺼진 찜질방은 적막하고 어색했다.

매점 주인은 냉장고 옆에 기대어 졸고 있었고,

사람들이 붐비던 식당도 문을 닫아

여기저기 흩어져 자는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와 숨소리를 빼곤...

그저 전기시설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백색소음처럼 나지막이 들려올 뿐,

낮과는 다르게 차갑고 고요하게 조용했다.


가방을 뒤적여 공책과 연필을 꺼냈다.

한참을 종이에 연필을 대었다가

다시 뗐다가를 반복했지만,

꿈에서 느낀 감정들과 지금 나 자신과 한

약속의 이야기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곱씹으며

빠뜨린 부분들도 군데군데 추가하며 모조리 글로 옮겼다.


그리고 조금 망설인 끝에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따스했던 봄볕, 부드러웠던 햇살이

한 여름의 뙤약볕으로 변해

고통을 버티는 스토리로 시작되었지만,

여정의 끝은 희망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각자 인생의 영웅이 되는 모습으로 끝났다.


내가 겪은 일을 때로는 비유로,

때로는 은유로 표현하며,

칼 대신 펜을 잡았다는 마음으로 -

마음의 독을 적어 내려 가며

점점 마음이 괜찮아지는 걸 느꼈다.



더 이상 가족의 부당한 요구를 짊어질 생각이 없었다.

나 또한 보살핌과 양육받아야 하는

또 다른 자식임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길로 검색해 나라가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내 첫인상

독이 바짝 오른 뱀 같았다고 했다.


글로 써 내려간 이야기가 담긴 노트를 건넨 채

간간이 질문에 대답하다 이내 끝이 없을 것 같은 눈물이 와락 터졌고,

장르소설 시놉은 끝까지 완성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니

멈춰있었던 것만 같던 시간이

빛처럼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독이 빠지면서부터는 정말 나를 위한 삶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신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나를 양육하며 보인 정서적 방임

언어폭력으로 가정폭력은 인정되긴 했지만,

지난한 시간 동안 법정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기하지 않고

18살의 생일도, 19살의 생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된 건,

모깨비와 지은이모 덕분이었다.



오갈 곳 없어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머무는 나를

주말마다 밖으로 꺼내서 달래주던

둘 덕분에 나는 조금씩 사랑을 준다는 게 뭔지,

사랑받고 이해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나라와 전학 간 학교의 지원을 받아 글을 썼고,

내 이야기는 주변 지인들의 걱정과 우려와 달리

10대의 미친 공감을 받으며

각각의 캐릭터 서사에 감정이입한 덕질로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기도 전에 바이럴 되어 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얼떨떨한 마음도 잠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내가 도리어 위안을 받으며

괜찮지 않던 모든 부분이

조금씩,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었다.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던 학부모들도
이 이야기를 계기로

서로가 일방적인 의사소통만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또 하루 자고 일어나면 어제 못 본 새로운 사람들이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며 응원해 주기 시작했다.

난 더 이상 타인에게 주눅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조금 여전히 떨리고 무서운 순간들이 왔다.

이 사랑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면 어떡하지?

이 행복이 내일 눈 뜨면 꿈이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에 며칠은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때 지은이모를 찾아가 물었다.



“이모, 지금 받는 관심과 사랑이 너무 무서워요. 사라지면 어떡하죠?”


- 그렇지 않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저는 엄마아빠 사랑도 못 받고 자랐는데, 이런 저를 끝까지 좋아해 줄지 모르겠어요.”


- 명희야.


“네, 이모.”


- 어떤 상처는 평생을 옆구리에 잘 끼고 걸어가야 한대. 이모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몇 개 있었는데 두 개쯤은 어떻게 잘 해결했거든?


“네. 나머지는요?”


- 이모도 사람이라 다 해결이 안 되어서 똑같이 주치의선생님께 여쭤봤어. 명희한테 내가 말한 대로 말씀해 주셨어.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보시더라. 명희는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저… 떡볶이요.”


- 그럼 아주아주 힘들 때엔 떡볶이를 먹어서 조금만 버텨보기로 하자. 그러다 보면 그 시간이 지나가고, 불안도 줄어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거든.


“이모는 뭐였는데요?”


- 아이쇼핑. 난 반짝이는 거 보는 거 좋아하거든.


“아… 한 번 해볼게요.”


- 응. 명희는 잘할 거야.


“감사해요, 이모.”



그렇게 다시 보호시설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문득 내 글에 달려있던 많은 댓글들이 생각났다.

밤새 꼬박 다 읽어보며 울다가 웃다가

내 글보다 댓글이 더 재미있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다가, 진짜 한국사람들

드립력은 미쳤다고 생각도 했다가 날이 샜다.



근데 이 자그마한 나라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았다.

몸보다 마음이 아파서 주저앉아버리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다.


그럼 내가 이렇게 도움 받아 다시 살아보려고

한 걸음씩 걷게 된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도우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선택지가 내 앞에 놓였다.

하나씩 지우고 추리기를 반복하고,

내 앞에 두 개의 선택지가 남았다.


타로리더와 미술심리치료사.


그래서 나는 용기 내어 누구도 가보지 않았을

새로운 길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정해져 있는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융합해 보기로 말이다.


색채치료와 미술심리치료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에게 꼭 필요한 타로카드 한 장을

함께 만들며 1 대 1로 마음을 치유하는

[마음지킴이]가 되기로.


프로젝트의 이름을 뭐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일본의 학교에서는 아침에

등교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오늘의 몸상태가 어떤지를

묻는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고심 끝에 제목을 지었다.



“정말 괜찮아요?”






아직도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부모님의 이름 아래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일상의 '나'는 그 가족에게서 분리해냈으므로.


그래서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다시 새로운 챕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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