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jo Jan 22. 2021

악의 평범성에 매료되지 않는 법

한나 아렌트의 정치강의

국정농단까지 갈 필요도 없다.

관료화된 회사조직 내에서는 쉽게 악의 평범성 개념을 찾을 수 있다. 겉으론 다들 도덕을 말한다. 그러나 한쪽에선 '규칙이라서'를 변명으로 악을 수용하고 이행한다. 그리고 다시 악을 생산한다. 


현 시대는 '먹고 살기'라는 이유를 붙이면 대부분의 행동에 합리성이 부여된다. 대부분 노동자인 우리는 매번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살아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악이라는 것이 반드시 못되먹은 놈에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유할 것을 권한다. 간단히 말해, 생각없이 살면 우리는 '악의 평범성'의 숙주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개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전체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란 사회 전체에 관한 진리를 독점하는 것으로써 사회에 필요한 다원성을 제거하는 경향을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들이 존재하는 세상에 '하나'의 생각과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독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독재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인 '누군가가 정권을 찬탈하고 폭력과 억압으로 지배하는 개념'으로만 생각해서는 부족하다. 전체주의의 주 목적은 사람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하고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체주의는 개인들이 의견을 낼 가능성을 막아서 개인의 의미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다. 전체주의는 예측할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판단과 결정을 내놓음으로써, 그 과정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말살시킨다. 

이러한 전체주의가 발현된 것이 바로 나치즘이다. 결과는 유대인 학살과 억압이었다. 여기서 악은 어디에 있는가.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몰아버리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해석은 전체주의에 관한 실체를 파악하기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 진짜 악을 찾기 위해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히틀러를 만들어낸 체계와 저항이 무엇인지, 그리고 히틀러의 명령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실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그는 히틀러의 명령을 착실히 수행한 친위대 중령이었다. 그가 전범이며 악한 행위를 한 사람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동기는 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군대라는 체계 안에서 히틀러에게 받은 명령을 착실히 수행하려는 의지를 가졌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어떻게 판단해야할까. 


악의 평범성은 바로 이러한 균열을 짚어낸다. 아렌트는 우리가 그저 사회의 법칙을 어리석게 순응하려고만할 때 악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홀로코스트나 기타 악한 행위가 이뤄지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거쳤다. 그 사이에 톱니바퀴라는 이유로, 악행이 희석됐다는 생각으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라는 이유로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때 악의 평범성은 찾아온다. 악은 이렇게 사람을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만들기 때문에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안에서 계속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그것을 멈춘다면 사회의 공정함도 정의로움도 만들어낼 수 없다. 사유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전체주의와 같이 우리 모두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돈'이다. 물질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톱니바퀴가 되어 알게모르게 악한 행위를 받아들인다. 자본주의의 톱니바퀴가 되지 않고,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자신과 타인의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주장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럴 수록 여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하고 타인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편한 방법을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주의가 우리에게 건네는 유혹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강의>는 최근 국내 사례를 들어 '악의 평범성' 개념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움을 준다. 지금 시대에서 악의 평범성을 깨울 수 있는 다원성 문제나 포스트트루스 문제에 관한 대응방식 또한 제시한다. 결국, 내가 이해한 악의 평범성의 대응방식은 혼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혼란한 현실을 혼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고정되고 명료한 사실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 혼란함에서 도피해 명료해 보이는 시스템의 생각과 법칙을 받아들이려하는 순간 악의 평범성은 찾아오게 돼있다.


틀리더라도/어렵더라도/혼란하더라도 계속 무언가를 판단하면서 자신만의 기준과 생각을 만들어야만이, 자신만의 시각과 화풍이 생긴다.

작가의 이전글 10년 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