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jo Jan 24. 2021

청각장애 노인이 적막을 선택한 이유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히어앤나우>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평생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노부부가 처음 소리를 처음 듣게 되기까지 과정을 그렸다. 나는 수많은 콘텐츠로 학습된 결과 쉽게 마지막 장면을 예측했다. 소리를 처음 들은 노인이 감동을 한다. 나도 감동한다. 미리 울 준비를 마쳤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그런 장면들도 있긴 했다.) 진짜 메세지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일어난다. 노부부는 청각을 인식하게 하는 기기를 내려둔다. 본지 워낙 오래된터라 부정확할 수는 있는데 대략 이런 말이었다.


"조용히 있고 싶군"

카메라는 노부부와 적막을 담았다.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노부부가 기기를 뺐을 때 나는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리는 노부부가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아니었나. 드디어 그게 충족되었는데 왜 거부하지? 그러나, 마지막 장면은 보란듯이 내 편협함을 꾸짖었다. 적막이 말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정상성에 기대어, 그들을 부족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니었냐고 말이다. 결여는 노부부와 기술에 있지 않았다. 내 생각과 세상의 인프라에 있었다.



광고회사에서 제안서를 쓰다보면 아이디어가 거기서 거기다.

(회사 by 회사겠지만)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장애인과 불우이웃이다. 자동차나 통신사가 사랑하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은 대개 이런 식이다. 가난하거나 장애인인 주인공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어여삐 여긴 최첨단 기술神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감동 스토리에 나도 울고 너도 울고 광고주도 울었다는 뭐 그런 얘기다.


나도 이런 소재에 상당한 유혹을 느낀다. 회의에서 이 유혹을 가중시키는 멘트가 있다. "어쨌든간에 결국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거잖아" 약 2주간 사람이 아이디어 회의한답시고, 개소리를 주고 받다보면 제정신도 아니고 해서 그럴 법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은 항상 찝찝하다. 도움은 순간적인 것 아닐까? 저 기술을 정말 장애인 모두가 누릴 수 있을까? 그리고, 히어앤나우의 노부부처럼 정말 저걸 원하긴 할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거나 들은 아이디어 중 이 세가지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요즘의 광고를 만드는 사람에겐 크리에이티브 능력만큼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걸러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광고란 일종의 사명감이 필요한 직업이다. 강제로 사람들에게 수천수만번 보여지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향한 비장애인들의 시각 교정의 측면만 고려해도 이 책은 훌륭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국한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장애는 개인의 손상된 신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김초엽x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181p) 는 말이 시사하는 것 처럼, 장애는 사회가 나누는 정상과 비정상의 위계와 상호관계에서 나타난다. 장애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즉, 꼭 장애인을 향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취향과 행위의 다수성을 정상으로 세워놓고선, 타인의 방식을 까내리는 짓 또한 돌아봐야한다.


책 리뷰라고 하기엔 매우 부분적이다.

이 밖에도, <사이보그가 되다>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 인간이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태도 등을 두 작가가 경험해 온 삶을 토대로 소개한다. 이 책이 장애인을 대표하는 어떤 생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다. (이 부분은 작가 둘 모두 스스로도 조심스러워한 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현재 기술의 발전과 발전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논의들을 허겁지겁 따라가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히어앤나우를 보고도 장애인에 대한 감동 포르노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장애인을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은 들었다가도 금새 잊기 쉽다. 들뢰즈는 홈 개념을 말한 적이 있다. 다수가 정해놓은 행동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홈 말이다. 관성에 의해 죽을 때까지 그 홈은 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사이보그가 되다>는 홈을 메꾸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꾸 꺼내읽어야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악의 평범성에 매료되지 않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