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jo Jul 14. 2023

관계도 주식처럼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건강한 자아 포트폴리오 만들기


나는 어떤 사회적 관계나 관심사가 생기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자아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다른 자아이고, 주짓수를 좋아하는 나는 또 다르다. 근데 관심사를 혼자 파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대체적으로 '관계'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 자아는 개별적으로 전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다차원적이다. 때로는 겹쳐 있기도 하고 속해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의 나'는 '주식하는 나'와 상당히 겹쳐있고, 이 둘은 모두 '돈을 좇는 나'/ '욕망의 주체로서의 나'라는 더 큰 테두리 안에 속한 자아다.


단일한 사회적 관계에 몰두하는 일은 단일한 자아(사실상 하나의 자아)만 갖는 일과 같다. 꼭 이게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만약 하나의 자아가 관계 속에서 성취와 안정을 이뤄서 만족에 이른다면 옳은 것이 될테고, 매번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면 그른 것이 될테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후자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전자와 같은 관계는 현실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성공을 위해 하나에만 몰두하는 사람 유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들도 성공을 바라보며 불안정을 감수하는 형태일 거라 본다)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 상대방에게 의지하는 사람,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부족 또는 승진문제로 괴로워 하는 사람은 하나의 자아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그곳에서 지적을 당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거고, 그곳에서 칭찬을 받으면 세상이 환해진다. 물론 이것도 누군가는 스릴있다며 선호할지도 모르겠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단, 관계는 '타인의 평가'로 이뤄지는데 그건 객관적이며 공정하기 어렵다. 즉. 자신의 노력과 통제 범위를 벗어난 힘으로 인해 자신의 자아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불안정한 모습을 띌 수 밖에 없다.


근데 세상 어딜가든 안 그런 곳이 있나? 물론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를 분산시켜야 한다. 얍삽하게 도망칠 곳이 많을 수록 정신건강에 유리하다. 내가 회사에서 욕을 먹으면 좌절할 게 아니라,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면 난 잘하고 거기 사람들이 있으니까" 라면서 떨쳐버려야 한다. 만약, 이 예시를 보고 "철없이 쾌락만 좇는 온라인 게임과 돈을 벌게 만드는 직장을 어떻게 같이 비교를 하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내 생각에 그건 이미 하나의 자아에 잠식된 상태라서 그렇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욕망의 주체인 나' 로 세상을 판단하는 상태로, 돈 안 되는 건 다 의미없다는 관점으로 너무 많은 걸 판단하는 상태다.


자본화된 세상에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이런 관점과 자아를 필연적으로 부여받는다. 그래서, 더더욱, 게임 / 운동 / 예술 기타 등등등 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자아를 많이 만들어 두는 게 필요하다. 자아를 다채롭게 만들어 둔다는 건 다채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는 말과도 같다. 그리고 이렇게 관점을 늘리고 나면 관용 또한 생긴다. 아까의 예를 이어가자면, "저 놈은 일 못하니까- 돈을 적게 버니까- 쓸모없는 놈이야"라는 식으로 사람을 단면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게 된다. 타인 역시 나처럼 다채로운 관계와 가치가 있음을 짐작하게 만들기 떄문이다. (물론, 관계를 늘린다고 저런 관점이 아무 노력없이 자동으로 생긴다는 말은 아니다.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자아의 생성과 배분은 주식처럼.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한다. 분산 투자를 해야한다. 상황은 변하게 되어있고 어떤 종목이 나 자신을 건사하게 할지는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면 어울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