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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jo Jan 19. 2021

권력을 행사하는 시선

블랙미러 시즌 1 - The National Anthem

*스포일러 있음 



이 에피소드는 '시선 권력'이나 '관음 주의적 행태' 그리고 '타자의 대상화' 등을 다룬다.


<The National Anthem>은 고디바 부인의 에피소드를 연상시킨다. 따지자면 고디바 부인의 에피소드와 <The National Anthem>를 엮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고디바 부인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싸웠지만 수상은 거의 대중을 상대로 싸웠다. 고디바 부인은 보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미션을 수행했지만, 수상은 본다는 약속 하에 미션을 수행한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지점은 여기다. 고디바 부인의 마을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을 보지 않기 위해 창문을 닫았지만, 영국인들은 수상을 보기 위해 창문을 닫고 대신 손 안의 창(블랙 미러 - 휴대폰, 티브이 등의 스크린)을 열었다. 그리고 프로이트로 치면 '보는 것의 쾌락'을 시전 하였고, 푸코로 치면 '시선 권력'을 행한다.



'보는 것의 쾌락'이든 '시선 권력'이든 뭐 어쨌든 간에, 이 두 가지가 <The National Anthem>와 접점을 이루는 부분은 명확하다. 우리는 시선을 통해 타자를 '대상화'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탁월한 현대문명의 발전, '블랙 미러' 덕택에 더욱더 편리하고 의식 없이 대상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행위는 타자를 단순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타자를 통제 가능하며 흥미로운 거리로 전락시킨다. 타자, 그러니까 <The National Anthem>의 수상의 수치심 역시, 바로 이런 타자의 시선과 타자와의 관계들 속에서 발생하게 된다.



당연한 얘기 같다만, 흥미거리와 수치심은 사회적으로 터부시 된 행위일 때 더더욱 빛을 발한다. 난교 행위를 자의로 인터넷에 올린 사람과 이를 공유하고 본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이는 영상에서 난교 행위자는 자신의 성적 쾌락의 대리인이자 대상물로 작용하게 된다.


지금 사회는 '권력형 착취'가 문제다. 자신이 가진 지위를 가지고 부정 청탁을 하거나, 성을 착취한다. 이런 사례를 보고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우린 어디서는 피해자지만 어디서는 가해자고, 어디서는 소수지만 어디서는 다수다. 단순히 나는 노동 자니까, 을이니까,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사람이다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 환경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 나는 어떤 부당한 권력을 누리고 저급한 쾌락을 행하고 있는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예전,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 동성애자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는 사람이 다가 아니다. 내가 공개된 광장으로 나왔을 때, 내게 꽂히는 시선들이 사실 가장 두려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소수자들에게 어떤 시선을 행사하고 있나. 그리고 그것은 블랙미러(휴대폰) 안에서 얼마나 쉽게 행사되고 있나. 따지고 보면 우리는 권력이 행사되는 그 지점. 블랙 미러 안에서 끊임없는 권력을 느끼고 행사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따라서, 이 <The National Anthem>의 핵심은

"나는 언제, 아니 오늘은 얼마나 많은 시선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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