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의 회사에서 다른 리더십을 만나고,
20명 가까이 되는 인턴과 일하면서 든 생각과 나보다 경험 많은 언니, 오빠들에게 조언 받은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단기적으로는 곧 다가올 인사평가,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감히 바란다.
1) 리더십의 피드백은 정치적이다.
사람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막상 상황에 닥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정치적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특히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들 또는 사람들을 많이 육성해본 사람들은 나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표현으로 피드백을 하기 때문에 내 인식의 왜곡은 더 심해진다. (그들 스스로 자아에 대해 가지는 왜곡은 논외로 하자)
그리고 그 왜곡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어느 날 속았다고 생각하며 분노에 휩싸이는 것이다. 피드백에 대한 수용도와 분노가 비례하게 나타나서, 조직으로부터는 성숙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표현이 나만을 위해 피드백을 주는 것처럼 전달되더라도 조직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맡고 있는 역할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드백의 내용이 정치적인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 피드백 하나하나에 대한 과대해석도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잘한다고, 못한다고 평가를 받았을 때 그것은 회사와 내가 속한 부서의 상황, 나에게 피드백을 주는 사람의 이해관계가 모두 맞물려서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플하게 회사가 매출이 줄고 있으면, 모두가 못한다는 피드백을 받은 확률이 높아진다.)
2) 리더십도 채찍이 무섭고, 애정을 바란다.
내가 리더십을 가지지 않았을 때, 내가 내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기준보다 훨씬 더 높은 기준을 리더십에게 적용했었다. '리더십이라면' 이라는 부사를 사용했던 것 같다.
업무의 보수로 얼마나 많인 받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던지와 상관없이 그들도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들은 저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나요 라고 물어보면서도 떨리고 ,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다.
좋은 리더십이라면 자기가 구성원들에게 잘 지내나요? 고맙습니다. 라고 말을 건넬텐데,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그들도 누군가에게 잘 지내세요? 라는 인사를 듣고 싶어한다는것이다. 당연하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리더십이 나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도 당연하게 요구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건 리더십과 구성원을 떠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고, 방어적인 태도는 공격적인 태도를, 공격적인 태도는 방어적인 태도를 낳는다.
3) 리더십은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리더십은 공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할 때는 공감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에서 '정상퇴행'이라는 개념이 있다. 정상적인 퇴행 과정을 통해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으로 건강한 프로세스이다. 프로페셔널해보이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혀가 짧아지는 것이 이런 정상퇴행의 예이다.
정상퇴행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것은 가족과 친구, 애인이며, 리더십은 적합한 대상이 아니다. 리더십은 이슈를 듣게 되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요새 힘들다라는 말을 "아~ 힘드시군요."로 끝낼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다. 힘든 원인을 정의하고, 해결을 하려고 애쓰게 된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에서건 해결을 기대하지 않을 경우(특히 조직의 철학과 연관되어 있는 부분은 문제 제기한다고 바뀌기가 어렵다.)에는 그들에게 이슈를 전달할 필요가 없고.
더 나아가서는 문제를 정의해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댓글은 다음 글을 쓰게 하는 응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