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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기적 Sep 22. 2022

1.한여름의 성공

< 글쓰는 엄마의 사생활 중 >

이십 칠일간의 방학이 끝났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일어나 밥을 먹고 새 실내화와 함께 학교로 갔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십칠인 동안 느즈막히 일어나 나와 딱 붙어 지내던 아이들은 지금쯤 하품을 하고 있거나 하품할 겨를도 없이 친구와 신나게 놀고 있거나.


글을 쓰다 보면 감이 오는 때가 있다. 아! 이 부분을 더 파보면 좋겠다. 이 부분을 더 발전시켜 보면 좋겠다. 하는. 혼자서 하는 궁리이고, 혼자서 하는 일이기에 맨땅에 삽질하며 무수한 실패와 매우 작은 성공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저 삽자루 잡는 대신 노트북을 펴고 나만의 문장채굴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끔 그 무수한 삽질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 즉, 맥을 짚힌다! 내가 쓰는 글이 나의 것이 아닌 듯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이!


그 순간은 결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투고 계획 중인 원고의 기획이 자꾸 바뀌면서 계속 엉켜있던 글이 모처럼 술술 풀리는 시기. 그 시기가 아이들 방학과 겹쳤다. 하필이면 왜? 원망을 해봐야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자고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아이들 방학은 4~5개월에 한 번씩 찾아오니까.


초등학교 4학년 된 큰아이와 함께 보낸 지난 여섯 번의 방학. 신기하게도 무수한 삽질을 해오던 내가 아이들 방학 무렵쯤이면 맥을 짚었다. 맥이라는 건 그 찰나는 붙들지 않으면 사라지기에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보다 맥을 택했다. 방학이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지만,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화면의 커서와 두 아이를 적당히 번갈아 바라보며 지냈다. 육아와 글쓰기. 어느 한쪽을 제대로 하기보다 적당히 둘 다 하는 전략으로 내 글의 희미한 부분을 좀 더 선명히 다듬고 싶었다. 


그러나 희미함은 계속 들여다 본다고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외려 미련 없이 노트북을 덮고 보란 듯이 풍덩 바다에 뛰어들 때, 물들어 가는 노을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깔깔대며 자전거를 탈 때. 그런데도 그 순간을 뚫고 나오는 생각이 결국 내 글의 희미함을 선명히 다듬어 주는 용천수와 같은 솟아오른 맥이었다.


그랬기에 이번 여름 방학.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아낌없이 놀았다. 제주에 살지만 한 번도 기본적 없던, 제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삼나무 숲길을 가고, 돌고래의 이동 경로라는 코난 비치에서 바다 수영을 하며 오래도록 돌고래를 기다렸다. 마치 내일의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그렇기에 우린 오늘 무조건 놀아야만 하는 것처럼 해 뜨기 전 나가서 해가 진 후에야 집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노트북도 와이파이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글 쓰는 일을 원 없이 쉬었다.  


어쩌면 아이들 방학을 핑계로 좀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 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정의하지만, 먼저 나온 두 권의 책은 너무나 부끄러워 물어도 제목을 안 가르쳐주는 나라서.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사소한 것도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진 나라서.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야박한 사람이라서. 정신적 과잉활동을 잠시 쉴 수 있는 당위가 절실했다. 참 신비롭기도 하지. 신기하게도 그럴 때 글이 술술 써진다니까. 부지불식간에 노트북을 펴지 않도록, 아이들은 방관 혹은 방치해버린후 미안함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더 나의 쉼에 분명한 당위가 필요했고 아이들의 방학은 더는 완벽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생각 과잉을 접고, 알차게 놀 궁리만 하며 지낸 이십칠일. 그 시간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투고한 글 동무는 한 번의 투고로 두 권의 책을 계약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 여름 그녀의 성공이었다. 그녀처럼 성실히 글을 쓰는 일상이 나의 이번 여름 일상은 아니었기에, 뜨거운 태양 아래 아낌없이 놀았던 날을 후회하지 않기에, 진심을 담아 그녀의 성공을 축하해주었다. 


문득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 나의 성공은 무엇일까?


뜨거운 태양 아래 불태운 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등교한 오늘, 내 안의 열정도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다. 앞으로 4개월 후, 또다시 아이들의 겨울 방학이 오기 전 하고 싶은 일, 해내고 싶은 일이 선명히 떠오른다. 쓰다가 멈춘 글은 여전히 흙탕물처럼 뿌연 생각의 우물 속에 있지만 그런데도 그 안에서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여름 내내 정신을 다른 곳에 둔 채 신나게 놀았어도 어서 빨리 건져 올리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면! 그렇다면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간 오늘 아침이야말로 그것을 건질 때이다. 아이들이 하품하고 있거나 또는 하품할 겨를도 없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는 시간 동안 나 역시도 하품할 겨를 없이 건져 올린 생각을 글로 담는 일에 쏙 빠져들 때이다.


때로는 억울했다. 진행중이던 글과 일을 아이들 방학과 함께 정지해야 하는 상황이. 그러나 이번 여름은 달랐다. 과감히 멈추는 것도 적당히 지속하는 것도 결국은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는 방향이 옳다면, 그 방향에 확신이 있다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결국에는 닿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멈추지 않는 결국 완성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할이 큰 지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감정이 상한 채로 하루를 살기에는 나의 모든 여름이, 뜨거운 태양이, 쑥쑥 커가는 아이들 모습이 그저 아까울 따름이다. 


때마다 찾아오는 방학처럼 앞으로 엄마로 사는 나의 시간도 정직하게 흐를 것이다. 내 품 안에 있던 아이들은 곧 청소년이 될 것이고 이내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니 방학 동안 글 좀 못 썼다고, 하던 일을 잠시 멈췄다고 예전처럼 아까워하지 않으련다. 아이와 나의 생이 조밀하게 겹쳐있을 앞으로 몇 번의 여름도 일을 접고 아이들과 함께 뜨겁게 보내더라도 아쉬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방식이 두 아이를 키우는 내가 아이와 함께 나를 키우는 방식이고 한여름을 성공적으로 보내는 방식일테니.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한여름에 쑥쑥 자라는 호박도, 한여름에 꽃을 피우는 백일홍도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결국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더욱더 튼실해지고 꽃을 피운다. 그렇기에 남과 비교했을 때 나의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 낼 일이 아니다. 외려 그 시기에도 부지런히 잎을 벌려 태양을 받아들이는 호박의 크고 넓은 잎과 백일홍의 단단한 꽃잎 처럼, 나의 일과 아이도 쑥쑥 자라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 시간을 충실히 보내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 것. 달콤한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라보게 된 것. 그것이 어쩌면 이번 여름, 글쓰는 엄마의 성공이다.


태양 아래 불태웠던 나의 한여름. 그 성공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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