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
여성가족부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대처로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바로 66.7%를 차지한 '참고 넘어감'이다. 2018년, 81.6%에 비하면 참지 않는 경향이 14.9% 증가했으나, 두 명 중 한 명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해도 여전히 참고 넘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 넘어간 이유(복수응답)로는,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59.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행위자와 사이가 불편해질까 봐’(33.3%), ‘문제를 제기해도 기관/조직에서 묵인할 거 같아서’(22.2%) 순이었다.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수였지만, 문제제기 후 상황을 우려해 참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 2021 성희롱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행위자와 사이가 불편해질까 봐', '문제를 제기해도 기관/조직에서 묵인할 거 같아서'가 나왔다. 여성 가족부는 이 세 가지를 각각 다른 이유로 보았지만,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인 내 생각은 다르다. 문제를 제기해도 회사에서 묵인할 것 같으니 행위자와 사이가 불편한채로 계속 마주치는 게 염려되고, 그러니 아무 대처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간다. 결국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이다. '문제를 제기해도 회사에서 묵인할 것 같아서'.
처벌이 확실하면 모든 피해자가 즉각 신고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엉덩이나 가슴을 주무르는 행위는 그 즉시 성추행임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령 컴퓨터를 가르쳐 준다며 뒤에서 껴안듯 감싸 안거나, '수고했다'며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동을 직장 내 성추행으로 보는 인식이 분명 예전보다 확대되었으나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다고 보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중소기업 대표 모임으로 동창회와 비슷했다. 회원들은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인맥이나 정보를 얻기위해 가입했다. 가해자는 업계에서 나름 권위가 있었고 나는 아무 힘 없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5인 미만 사업장이라 나는 근로기준법의 보호 조차 받지 못했다. 신고를 한다해도 가해자에게 조치가 취해지기보단 내가 해고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며 재취업도 어려운 40대에 해고를 각오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두 번이나 성추행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2차 추행을 당한 뒤, 이번에도 가만히 있으면 3차로 이어질 것 같아 가해자에게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몇달 뒤, 가해자 최측근이 회장으로 내정되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가 그 이유였으나 나는 정규직이었다. 이건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5인미만 사업장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