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추행 바로 신고하지 못한 이유
1999년 국가 경제가 휘청하던 IMF 시절,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다니던 그때 나 혼자 쫓기듯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게 문서 편집이지만 이때만 해도 파워포인트, 엑셀, 한글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건 나름 ‘기술’을 갖춘 거라 어렵지 않게 취업 할 수 있었다. 특히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같은 경우엔 이력서를 넣고 30분 뒤에 전화가 와서 다음 날 면접 보고 바로 출근한 적도 있을 정도로 정말 쉬웠다.
내 꿈은 가수였다. 회사를 다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음악에 매진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다 다시 돈이 궁해지면 취업하기를 반복하며 2,30대를 보냈다. 우리 집이 가난해 꿈에 매진하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문제는 나였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힘들어도 버티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자신이 업그레이드되어 문제가 문제로 안 보인다. 하지만 나처럼 돌파하지 않고 이리저리 도망치면 발전도 없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영.원.히.
이렇게 내가 ‘꿈’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긴 시간 동안, 나름 특별한 기술이었던 문서 편집 능력은 한국 사람이 한국말하는 게 당연하듯 사무직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게 되었다. 거기에 별 기술 없이 사무 업무로 계속 입퇴사를 반복하다 보니 경력도 인정되지 않아 직장 생활을 10년 넘게 했음에도 급여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찬란한 청춘이 사라지자 비로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냉정한 현실이 보였다. 이제는 그만 도망치고 버텨야 했다. 더 늦기 전에 한 우물을 파야했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이왕이면 오랫동안 근무할 곳에 가고 싶었지만 찬 밥 더운밥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니 일단 오라고 하는 곳엔 다 갔다. 그땐 마음이 급해 멀리 보지 못했다. 아무도 안 쓰는 30대 중후반의 특별한 기술도 없는 여직원을 굳이 채용하는 곳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몇 달만에 생리불순, 대상포진 등 몸에 이상이 생겨 퇴사하고 다시 일을 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