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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 구직하다 공황발작(2)

쩝쩝 소리는 대상포진을 일으켜

by 이영

39살, 마지막 근무지는 직원이 총 4명인 치과 용품 제조 벤처기업이었다. 대표는 치과 의사로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고 대표의 친형이라는 부대표가 사무실에선 사실상 최고 권한자였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영업 부장도 한 명 있었으나 “부대표가 깡패 출신이라 회사가 돌아가는 절차를 모른다.”고 자주 투덜거리더니 내가 입사한지 한 달도 안 되어 퇴사했다. 결국 사무실엔 나와 부대표 두 명만 있었다.


사무실은 약 30평이었다. 이 넓은 공간에 책상 4개, 정수기, 책장 하나, 테이블 하나만 있고 나머지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기에 전기요금 아낀다고 형광등을 다 켜지않아 사무실은 어둡고 이제 막 이사 온 것처럼 어수선했다.


IMG_4069.PNG 당시 사무실(1) 이사 가려고 짐 뺀 거 아닙니다.



책상 4개는 사무실 한쪽에 모여 있었고 파티션은 없었다. 부대표는 바로 내 뒤에 앉아 갑자기 “그건 뭐냐?”고 물으며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으나 그래도 여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가장 괴로운 건 입맛 다시는 소리였다. 층간 소음에 귀가 트이면 이전엔 안 들리던 작은 소리가 들리다 나중에는 환청까지 들린다고 한다. 이때 내가 그랬다. 하루 종일 붙어서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듣다 보니 나중엔 집에 와서도 그 소리가 들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순 없으니 이어폰을 꽂고 버텼다. 하지만 환청이 들릴만큼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이어폰은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스트레스로 대상포진에 걸리고 말았다.


IMG_4070.PNG 이 넓은 공간에 둘만 있는데 자리배치가 이게 최선입니까?!


퇴근길, 차에서 나오다 팔이 나뭇잎에 닿았다. 항상 주차하던 자리라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날은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통증을 잘 참는다. 새끼발가락이 부러진 줄도 모르고 2주나 참다 병원에 간 적도 있다. 누군가 “새끼발가락 골절과 대상포진 중 뭐가 더 아프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대상포진이 훨씬 아프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다음날 아침,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뭇잎에 닿았던 팔은 물론 배, 등에도 눈에 보이는 증상은 전혀 없어 대상포진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대상포진은 48시간 안에 약을 먹으면 금방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다행이도 발병 다음 날 바로 약을 먹어 큰 고생 없이 금방 나았다.


대상포진을 앓고 나니 바로 뒤에서 감시 당하며 하루 종일 쩝쩝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 스트레스를 다시 견딜 엄두가 안 났다. 다시 구직할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무거웠지만 퇴사를 했다. 40살을 겨우 몇 달 남겨놓고 다시 백수가 되니 초조했다. 지금도 이런데 40이 되면 취직하기 더 힘들 것 같았다. 나이제한이 없는 곳이면 다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다 허위 공고에 속아 면접을 봤고, 결국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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