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 소리는 대상포진을 일으켜
39살, 마지막 근무지는 직원이 총 4명인 치과 용품 제조 벤처기업이었다. 대표는 치과 의사로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고 대표의 친형이라는 부대표가 사무실에선 사실상 최고 권한자였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영업 부장도 한 명 있었으나 “부대표가 깡패 출신이라 회사가 돌아가는 절차를 모른다.”고 자주 투덜거리더니 내가 입사한지 한 달도 안 되어 퇴사했다. 결국 사무실엔 나와 부대표 두 명만 있었다.
사무실은 약 30평이었다. 이 넓은 공간에 책상 4개, 정수기, 책장 하나, 테이블 하나만 있고 나머지 공간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기에 전기요금 아낀다고 형광등을 다 켜지않아 사무실은 어둡고 이제 막 이사 온 것처럼 어수선했다.
책상 4개는 사무실 한쪽에 모여 있었고 파티션은 없었다. 부대표는 바로 내 뒤에 앉아 갑자기 “그건 뭐냐?”고 물으며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했으나 그래도 여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가장 괴로운 건 입맛 다시는 소리였다. 층간 소음에 귀가 트이면 이전엔 안 들리던 작은 소리가 들리다 나중에는 환청까지 들린다고 한다. 이때 내가 그랬다. 하루 종일 붙어서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듣다 보니 나중엔 집에 와서도 그 소리가 들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순 없으니 이어폰을 꽂고 버텼다. 하지만 환청이 들릴만큼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이어폰은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스트레스로 대상포진에 걸리고 말았다.
퇴근길, 차에서 나오다 팔이 나뭇잎에 닿았다. 항상 주차하던 자리라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날은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통증을 잘 참는다. 새끼발가락이 부러진 줄도 모르고 2주나 참다 병원에 간 적도 있다. 누군가 “새끼발가락 골절과 대상포진 중 뭐가 더 아프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대상포진이 훨씬 아프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다음날 아침,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뭇잎에 닿았던 팔은 물론 배, 등에도 눈에 보이는 증상은 전혀 없어 대상포진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대상포진은 48시간 안에 약을 먹으면 금방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다행이도 발병 다음 날 바로 약을 먹어 큰 고생 없이 금방 나았다.
대상포진을 앓고 나니 바로 뒤에서 감시 당하며 하루 종일 쩝쩝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 스트레스를 다시 견딜 엄두가 안 났다. 다시 구직할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무거웠지만 퇴사를 했다. 40살을 겨우 몇 달 남겨놓고 다시 백수가 되니 초조했다. 지금도 이런데 40이 되면 취직하기 더 힘들 것 같았다. 나이제한이 없는 곳이면 다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다 허위 공고에 속아 면접을 봤고, 결국 공황발작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