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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였을까?

결국엔 전화위복

by 이영 Feb 23. 2025

2019년부터 알던 가해자에게 22년, 23년에 성추행을 당했다. 범죄자, 나르시시스트 등은 본능적으로 먹잇감을 알아본다고 한다. 이를 알았기에 ‘내가 만만해 보여서, 약해서 당했구나’ 싶었다. 맞다. 당시 나는 인생에서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가해자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알아봤다. 


만약 내가 이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다르게 행동했다면 이후 과정이 지금보단 쉬웠을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웠다. 인정하면 영원히 '만만해 보이는 사람'일 것 같았다. 마음공부에선 어떤 감정을 외면하면, 인정할 때까지 그 감정을 느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한다. 이 기회를 피하자 삶은 2차 성추행, 부당해고를 통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겁쟁이였는지, 근로기준법 적용도 못받는 사회적 약자인지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지니 비로소 올라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시작으로 가해자를 고소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구직 스트레스로 공황발작까지 겪고 얼마 뒤, 마침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취직을 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르고 바라던 대로 40살 전에 취업에 성공해 마냥 행복했다. 


빌딩은 오피스 지역에 있었다. 1층에는 으리으리한 로비와 인포 데스크가 있고, 엘리베이터도 여러 대인 큰 건물이었다. 직장 생활을 20년이나 했지만 이렇게 큰 빌딩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다녔던 회사를 통틀어 화장실도 가장 쾌적했다. 남녀 구분이 명확하고 수시로 청소되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역에서 나와 빌딩 숲을 걸을 때면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커리어우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환상은 금방 깨졌다. 나는 남의 회사 어느 부서, 남는 책상을 사용하는 애매한 꼽사리일 뿐이었다. (파견직 설움 보기) 그럼에도 부당 해고 당하기 전까지 무려 6년 2개월이나 다녔다. ‘시간제 근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무실에 있을 때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지만 풀타임이 아니기에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처음 입사했을 땐 2년만 다닐 생각이었다. 2년만 투자하면 이후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대로 안 될 때도 있다. 열심히 했다고 반드시 성공하지도 않는다. 2년 뒤에도 여전히 나의 가장 큰 수입은 시간제 근무자로 버는 월급이었다. 도전한 시간이 늘어난 만큼, 열심히 한 만큼 좌절만 더 커졌다. 내 작품이 그렇게 별론가? 내가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메타인지와 자기 비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 떨어졌다. 거기엔 늪이 있었다. '노후준비'라는 늪.


이때까지 노후 준비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막연히 ‘언젠간 대박 나겠지’ 하며 현실을 외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전액 현찰로 외제차를 샀다는 친구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여전히 엄마 집에 얹혀사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남편, 자녀와 함께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 부장, 사장, 주부 등으로 다들 달라졌는데 나만 여전히 20대 초반 상황 그대로였다. 충격을 받았다. ‘20년 동안 뭐 했지? 헛살았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잠이 안 왔다. 그냥 죽고만 싶었다. 이 상태가 몇 주간 지속됐다. 살면서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최대한 빨리 내 또래 평균과 격차를 줄이고 노후 준비도 해야 했다. 이런 시간제 근무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2020년 12월, 세무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결심을 내리기까지 약 반년 정도가 걸렸다. 이 기간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와 계속 약을 바꾸고, 용량을 바꿨다. 그러다 세무사 공부를 시작하자 비로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더 이상 병원도 가지 않았다.


이때부터 2023년 6월, 고시를 포기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뭐 입을지 생각하는 몇 분의 시간조차 아까워 계절마다 상의 두 벌, 하의 두 벌을 돌려 입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독서실 가서 공부하다 출근하고 퇴근하면 다시 공부하다 12시면 기절하듯 잠드는 일상을 2년 넘게 되풀이했다. 


앉아만 있으니 살이 10kg가 쪘다. 여기에 운동부족과 고시 생활 스트레스가 더해져 2022년 봄부터는 아토피와 비슷한 화폐상습진이 얼굴, 발, 다리를 뒤덮었다. 열감과 가려움, 수포가 터져 진물이 흐르는 찝찝한 느낌 때문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가 100이라면 이미 60은 사용한, 딱 봐도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상태가 됐다. 


가해가자 나를 처음으로 추행한 날은 1차 시험이 50일 정도 남은 때였다. 외부 손님도 오는 큰 행사 날이었다. 나는 유일한 직원이자 유일한 책임자로 행사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해자는 나의 자세한 사정, 피부병 약을 먹어 몽롱하고 시험이 코 앞이라 다른 건 신경쓸 여력이 없다는 건 몰랐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저 여직원이 지금 예전과 다르게 매가리가 없는 걸 귀신처럼 알아봤다. 게다가 그곳은 가해자가 30년 넘게 왕처럼 군림한 본인 소유의 회사였다. 그는 본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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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다리 상태. 수포-진물-딱지-수포-진물-딱지가 반복되며 이 과정에서 미칠듯한 가려움이 동반됨.





덧.

화폐상습진은 정말 가렵습니다..ㅠ 모기 물려서 가려운 거 있죠? 그거 100배 정도 되는 가려움이 온종일 지속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소금물에 발 담그고 그 가려움을 1년 반이나 참으며 공부했다는 게, 약 3년 동안 계절 내내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요. 그만큼 간절했고, 정말 열심히 했었죠.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1차 시험조차 합격하지 못한 덕택에(?) 미련 없이 고시 공부를 접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친 듯 열심히 한 경험은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지구 내핵까지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시험엔 떨어졌지만 의외로 자신감을 회복한 것처럼 당시엔 마냥 나쁘기만 했던 일이 몇 년 지나서 보면 전화위복이 되어있곤 합니다. 두 번의 성추행, 부당해고 그리고 고소라는 힘든 경험도 나중에 보면 복이 되겠죠? 그 희망으로 오늘도 버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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