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전화위복
회원사 견학차, 지방에 있는 공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유일한 직원이었던 나는 외부 손님도 참석하는 큰 행사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내가 피부병 약으로 몽롱했고, 시험을 50일 앞두고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평소와 달리 힘이 빠진 나를 날카롭게 감지했다.
30년 넘게 왕처럼 군림해온 자신의 회사에서, 그는 그 유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본성을 드러냈다.
그때 나는 방어할 힘도 없이 무력했고, 눈앞의 현실보다 불안과 공포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겐 함부로 대해도 괜찮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 몸으로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던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아마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에겐 함부로 대해도 될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2019년부터 알던 가해자에게 2022년, 2023년에 성추행을 당했다. 범죄자나 나르시시스트는 본능적으로 먹잇감을 알아본다고 한다. 이를 알았기에 ‘내가 만만해 보여서, 약해서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당시 나는 여러 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고 가해자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감지했을 것이다.
만약 이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이후 과정이 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웠다. '내가 만만해 보여서 당했다' 인정하면 영원히 만만해 보이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그래서 만만해 보여서 성추행을 당한 게 아니라 예민해서 착각했을거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단 착각했다 믿는 쪽이 차라리 마음이 덜 아팠다.
마음공부에선 어떤 감정을 외면하면, 그 감정을 인정할 때까지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한다. 첫 번째 성추행을 당했을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솔직하게 마주하지 못했고 얼렁뚱땅 넘어가자 2차 추행, 부당해고 까지 겪게 됐다. 그제야 비로소 현실을 인정했다. 나는 나 자신도 못지키는 겁쟁이이자 근로기준법 적용 조차 못받는 사회 최약체였다. 이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고 나니 역설적으로 올라갈 용기가 났다. 그 시작으로 가해자를 고소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구직 스트레스로 공황발작까지 겪고 얼마 뒤, 마침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취직을 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르고 바라던 대로 40살 전에 취업에 성공해 마냥 행복했다.
회사는 오피스 지역에 있었다. 1층에는 으리으리한 로비와 인포 데스크가 있고, 엘리베이터도 여러 대인 큰 건물이었다. 직장 생활을 20년이나 했지만 이렇게 큰 빌딩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다녔던 회사를 통틀어 남녀 구분이 명확하고 수시로 청소되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전철역에서 나와 빌딩 숲을 걸을 때면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커리어우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환상은 금방 깨졌다. 나는 남의 회사 어느 부서, 남는 책상을 사용하는 애매한 꼽사리일 뿐이었다. (파견직 설움 보기) 그럼에도 부당 해고를 당하기 전까지 무려 6년 2개월이나 다녔다. ‘시간제 근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무실에 있을 때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지만 풀타임이 아니기에 견딜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월급이 나오니까!
하루는 친구가 전액 현찰로 외제차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여전히 엄마 집에 얹혀사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남편, 자녀와 함께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기업 부장, 사장, 주부 등으로 다들 달라졌는데 나만 여전히 20대 초반 상황 그대로였다. ‘20년 동안 뭐 했지? 헛살았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여러 생각에 잠이 안 왔다. 그냥 죽고만 싶었다. 이 상태가 몇 주간 지속됐다. 살면서 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최대한 빨리 또래 평균과 격차를 줄이고 노후 준비도 해야 했다. 월급 백만원 남짓의 이런 시간제 근무로는 불가능했다. 2020년 12월,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결심을 내리기까지 약 반년 동안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들지 않아 계속 약을 바꾸고, 용량을 바꿨다. 그러다 공부를 시작하자 비로소 수면제를 끊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병원도 가지 않았다.
이때부터 2023년 6월, 고시를 포기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뭐 입을지 생각하는 그 몇 분 조차 아까워 계절마다 상의 두 벌, 하의 두 벌을 돌려 입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독서실 가서 공부하다 출근하고, 퇴근하면 다시 공부하다 12시면 기절하듯 잠드는 일상을 2년 넘게 되풀이했다.
앉아만 있으니 살이 10kg가 쪘다. 여기에 운동부족과 고시 생활 스트레스가 더해져 2022년 봄부터는 아토피 증상과 비슷한 화폐상습진이 얼굴, 발, 다리를 뒤덮었다. 24시간 내내 느껴지는 열감과 가려움 때문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힘들었다. 이런 몸으로 직장 생활과 공부를 병행해 지칠대로 지친 내 모습은, 누군가에겐 먹잇감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회원사 견학차, 지방에 있는 가해자의 공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유일한 직원이던 나는 외부 손님도 참석하는 큰 행사를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해자는 내가 피부병 약을 먹어 몽롱하고, 시험 50일 전이라 다른 일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건 몰랐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평소와 다르게 기력이 없는 나를 알아챘다. 게다가 그곳은 30년 넘게 자신이 왕처럼 군림해온 곳이었다. 그는 그 유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본성을 드러냈다.
덧.
화폐상습진도 아토피처럼 고통스럽게 가렵습니다. 소금물에 발 담그고 그 가려움을 1년 반이나 참으며 공부했다는 게, 약 3년 동안 계절 내내 똑같은 옷만 입고 출근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요. 그만큼 간절했고, 정말 열심히 했었죠.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1차 시험조차 합격하지 못한 덕택에(?) 미련 없이 고시 공부를 접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뭔가를 열심히 해본 경험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시험엔 떨어졌지만 의외로 자신감을 회복한 것처럼 당시엔 마냥 나쁘기만 했던 일이 몇 년 지나서 보면 전화위복이 되어있곤 합니다. 두 번의 성추행, 부당해고 그리고 고소라는 힘든 경험도 나중에 보면 복이 되겠죠? 그 희망으로 오늘도 버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