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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추행과 대응

by 이영 Mar 09. 2025

약 1년 뒤, 이번에도 1차 때와 똑같이 외부 행사 날 비슷한 추행을 당했다. 그 즉시 이전보다 더 큰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이 때도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어느새 얼어붙어 가해자를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후 몇 년 동안 또 아무 대처도 못한 바보 같은 나한테도 화가 났다. 그러다 이 뉴스를 보고 자책을 끝낼 수 있었다. 덩치 큰 남자도 얼어붙는 걸 보면 그 자리에서 즉각 대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가해자에게 정말 만만하게 보였고, 이번에도 가만히 있으면 또 당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고용보험 콜센터에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사내 담당자에게 신고하라 했다. “직원이 저 하나뿐이라 그런 담당자가 따로 없는데.. 그럼 어떡하죠..?”.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셨죠? 거기 도장 찍은 대표에게 말씀드리세요.”


전 직장은 중소기업 대표 모임이었다. 쉽게 말해 동창회 같은 곳으로 회원들은 인맥을 쌓아 사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여기에 나온다. 가해자는 평소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으로 이 모임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존 회원은 물론 이 모임의 주 거래처인 다른 단체와도 깊은 친분이 있었다. 


반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회장님은 내가 볼 땐, 등 떠밀려 회장이 된 분으로 맡은 일엔 책임을 다 지셨지만 이곳에 큰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과연 이 분이 목소리 큰 가해자와 불편해지는 걸 각오하고 조치를 취해줄지 의문이 들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도 쉬우니 차라리 나를 자를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며칠이 지나 일요일이 됐다. 산책을 하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당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핸드폰을 꺼내 지금 당장 상담할 수 있는 곳을 찾아봤다. 다행히 가능한 곳이 있었다. “네, xxx입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엉엉 울며 횡설수설 이야기를 쏟아냈다. 상담사님은 내가 진정될 때까지 차분히 얘기를 들으며 격려해 주었다. “오늘 일요일인데 문자 보내도 될까요? ㅠㅠ 그래도 직장 상사고 오늘은 쉬는 날인데..”.(이와중에도 나보다 가해자 입장을 먼저 생각할만큼 노예근성과 해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이 전화 끊으면 바로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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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 이후, 다시 마주쳤을 때 가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신경이 쓰였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해자는 1달에 1~2번은 꼭 하던 업무 연락을 끊었고, 한동안 공식 행사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참석하지 않는 다른 행사는 매달 참석한 걸 보면 아마도 나를 피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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