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이직을 많이 하면 구인공고만 봐도 ‘여긴 아니야’ 느낌이 온다. 급여가 이상하게 많은 곳,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곳, 근무 환경 좋다고 굳이 사무실 사진을 올려놓고 급여는 비공개인 곳. 이런 곳은 높은 확률로 오래 다니기 힘든 뭔가가 있다. 처음부터 이력서도 안 넣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런데 사람이 마음이 급하면 평소엔 보이던 게 안 보인다.
대상포진으로 퇴사 후 면접도 한 번 못 보고 세 달이 지났다. 어느새 40이 코앞이었다. 이렇게 백수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 앞자리가 ‘4’가 되면 취업하기 더 어려울 게 뻔했다. 불안, 초조가 극에 달했다. 기준을 낮추고 가능한 모든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제야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회사는 부천에 있었다. “바쁠 땐 업무 구분 없이 서로 돕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렸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1:1로 면접을 봤다. 면접관은 “규모가 작아 경리 업무가 많지 않다. 아예 일 없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제조는 마감 날짜를 지켜야 해서 바쁠 때가 많다. 그럴 땐 좀 도와줘야 하는데 괜찮은지?”라며 질문 형식의 지시를 했다. 작은 회사에선 흔한 일이라 괜찮다 답했다.
설명이 이어졌다. “제조 공장은 아산에 있다. 여기에 주차해놓고 같은 차로 다같이 가도 된다. 가면 1~2주 정도 숙식하고, 아직 작은 회사라 수당은 없다. 그 대신 일 없을 땐 일찍 보내 준다.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그땐 당연히 수당 줄 거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황당한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래처에서 A/S 요청이 왔는데 담당자가 바로 못 가면 먼저 가서 말이라도 들어주면서 기분을 풀어줘야 한다.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해주면 더 좋다. 별로 안 어렵다.”
여기까지 들으니 확실했다. 경리를 찾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숙박? 수당은 회사가 커지면 줘?? 이력서도 넣지 말아야 할 회사였다. 속아서 여기까지 온 게 분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건 경리업무가 아니잖아요!”하고 나왔다. 다행히 워크넷에 있던 공고라 바로 신고를 했다. 나중에 보니 경리가 총무로 바뀌어 있었다. “바쁠 땐 업무 구분 없이 서로 돕는 가족 같은 분위기”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지원 안 했을 텐데 절박해서 실수를 했다. 속상했다.
얼마 뒤 두 번째 면접이 잡혔다. 신촌에 있는 상담 클리닉이었다. 홈페이지를 봤다. 상일동에도 지점이 있었다. 원장 프로필엔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이 길게 나열돼 있었다. TV에 이렇게 많이 나왔으니 거짓말은 안 할 것 같았다. 구인공고에 근무시간이 “2교대”라고만 적혀 있어 홈페이지에서 영업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이었다. 하루 6시간씩 2교대 인가보다 추측했다. 실수였다. 지레짐작 하면 안 됐고, 전화로 확인했어야 했다.
시간 맞춰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유 없이 45분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엔 상담이 길어지는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아니었다. 손님은 없었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하는 걸 보니 원장은 자다 깬 게 분명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무려 45분이나 기다린 게 후회됐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은 사실 상일동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 했다. 신촌은 지원자가 많은데 상일동은 없어서 부득이 신촌으로 올렸다고. 그리고 2교대도 아니었다. 하루 근무, 하루 휴식인 격일 근무였다.
'2교대' 표기는 실수라 해도 '신촌'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또 허위 공고에 속은 데다가 이번엔 45분이나 기다려 처음보다 더 분통이 터졌다. 두 곳 모두 평소 같으면 처음부터 아예 지원 안 했거나 애매한 부분에 대해 미리 확인하고 피했을 터였다. 어떻게든 취업하려 덜 까다롭게 이력서를 넣은 결과가 취업 성공은커녕 허위 공고에 연달아 낚인 거라니. 불안, 초조, 걱정에 자괴감이 더해졌다. 절망적이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상담가들의 모임이었다. 면접관은 세 명으로 모두 인상이 좋으면서도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면접에서 흔히 주고받는 말들이 오가다 말문이 막히는 질문을 받았다. “감정 노동을 잘 견디는지요? 우리가 종종 날카로워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 질문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마흔을 한 달 남기고 취업 못할까 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상태가 아니었다면, 벌써 몇 달째 이력서 수십 통을 넣고도 면접은 겨우 세 번 본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마저도 앞에 두 번은 허위 공고라 면접보고 실망, 분노, 걱정만 더 커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전 직장에서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았었다면, 처음부터 돈 때문에 쫓기듯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면.
여유가 있었다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을거다. "사회 생활에서 감정 노동은 기본이죠, 그 정도는 단련됐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불안이 극심한 상태였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안 떨어지는 입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 말하는 나도, 듣는 사람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며칠 뒤 문자를 받았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예상했던 바였으나 그래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순간 갑자기 천둥이 치는듯한 우르릉 쾅쾅 소리와 함께 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그림처럼 사방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려 나를 덮쳤다. 무게에 짓눌려본능적으로 감싸안은 머리를 바닥으로 파묻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울음이 터졌다.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고 멀쩡한 방이 보였다. 믿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안이 벙벙한 채 한참 동안 방을 바라봤다.
당시에는 이게 공황발작인지 몰랐다. 나중에 TV에서 얘기를 듣고 ‘아, 그때 그게 공황발작이었구나’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