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주차장
퇴근은 늘 15분이면 끝난다. 성수 사무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와 건대 집까지 좌회전하고 우회전 그리고 다시 자회전 후 직선처럼 달리면 된다.
오늘도 그랬다—엑셀을 밟자 엔진이 미끄러지듯 속도를 올렸고, 창문 틈새로 늦은 해가 목덜미를 데웠다.
그런데 두 블록쯤 지나자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욕망이, 그 뜨거운 짐승이 안전벨트 아래에서 발톱을 세우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집으로 향하면 서류 봉투처럼 접혀 버릴 것 같았다.
차를 돌려 건대 이마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 시간엔 지하3층은 늘 텅 비어 있다. 차를 기둥 옆에 세우고 시동을 끈 순간, 엔진이 식으며 차체가 낮게 떨렸다.
그 진동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복부를 살짝 간질였다.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조금 내렸다. 주차장 공기는 밤치고는 뜨거웠고, 엔진 열과 섞여 차 안이 미지근한 호흡으로 가득 찼다.
손을 스티어링 휠에서 떼어 허벅지 위로 내렸다. 가죽 시트가 얇은 바지를 통해 땀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선명했다. 눈을 감자, 낮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장면이 바로 재생됐다.
피부가 부딪히는 소리, 짧게 끊어지는 숨, 그리고 뒷목을 타고 흐르던 미끄러운 열.
벨트를 풀고 시트를 뒤로 살짝 눕혔다. 루프 창 너머 도시 불빛이 박힌 하늘이 천장처럼 드러났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가죽 냄새에 묻힌 체온이 한층 짙어졌다.
셔츠 단추를 하나 풀었다. 손끝이 목선에 닿는 순간, 작은 한기와 열기가 동시에 피부를 두드렸다. 허리띠 버클을 푸는 금속음이 차 안에 작게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누군가 귓가에서 숨을 들이쉬는 듯 낮고 뜨거웠다.
바깥에선 누군가 주차장을 한 바퀴 도는지, 타이어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사라졌다. 그 낯선 기척이 오히려 심장을 더 빠르게 두드렸다.
불빛 하나 없는 지하 주차장, 열린 창문, 그리고 곧 끊어질 것 같은 숨. 허리를 살짝 들어 시트에 등을 밀착시키자, 골반이 뜨거운 가죽에 눌리며 작은 전류가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바지는 이미 불편하게 당겨졌고, 손바닥이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지자 욕망이 금속성 맥박으로 변했다.
한순간, 낮에 회의실 형광등 아래서 떠올렸던 얼굴이 번개처럼 스쳐 갔다. 젖은 머리칼, 목줄기를 따라 흐르던 땀방울, 입술을 삼키던 짧은 숨소리. 기억이 아니라 감각이 먼저 달아올랐다.
손목이 가볍게 떨렸고, 복부 아래로 뜨거운 피가 몰렸다. 차창 너머 도시 불빛이 뭉개져 흐릿한 네온으로 번지자,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았다.
허벅지 근육이 수축했다 풀리며, 마치 누군가 다리 사이를 스치는 착각이 일었다. 그 착각이 점점 뚜렷해지더니, 갑작스러운 파문처럼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열이 터졌다.
짧은 신음이 목구멍을 스치고, 호흡이 뜨겁게 피어올랐다. 시트 아래서 가죽이 삐걱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고, 그 순간 열기는 정점을 찍었다. 눈을 떴을 때, 차 안은 여전히 미지근한 숨으로 가득했다. 시계는 7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0여분이면 충분한 퇴근길이 한 시간으로 늘어났을 뿐이었다.
셔츠 단추를 다시 끼우고 허리띠를 조였다. 손바닥에 남은 미세한 떨림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창문을 올리고 시동을 걸자, 라디오가 자동으로 켜졌다.
어딘가 시끄러운 팝송이 흘러나왔지만, 금방 끄지 않았다. 음악이 차 안에 남은 열기를 적당히 식혀 주는 것 같았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5분. 강변북로를 탈 일도, 빗속을 걸을 일도 없었다.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오며 뒤차 헤드라이트가 백미러를 비췄다. 잠깐 눈이 부셨지만, 곧 시야가 맑아졌다. 방금 전 차 안에 남긴 열기는 백미러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대신 묘하게 가벼운 심장이 핸들 위에서 뛰고 있었다.
오늘 화요일은 이렇게 정리됐다. 욕망은 눌러 두지 않았고, 굳이 확장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풀고, 적당히 숨겼다. 집에 도착하면 샤워기 물줄기 아래서 마지막 잔열을 씻어 낼 것이다. 그러면 내일 아침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근할 힘이 남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