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열어두고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화면을 바라봤다. 커서가 깜빡이는 걸 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꼭 말을 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침묵도 아닌 상태. 요즘의 나는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 하루를 바라보고 있다.
아침과 저녁의 경계는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커피는 늘 비슷한 시간에 식는다. 일정은 정리되어 있고, 해야 할 일들은 차분하게 제자리를 지킨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변화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날들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이유를 굳이 붙이자면,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여전히 산만하다. 작업 중에 문득 다른 장면이 떠오르고, 엉뚱한 음악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메모를 하다 말고 창을 닫고, 다시 열었다가 아무것도 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흘러가고, 나는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반복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가끔은 이 반복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싶어진다.
글을 쓴다는 건 나에게 여전히 그런 행위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정리하기보다는, 잠시 속도를 늦추는 일. 생각을 한 줄로 세우기보다, 흐트러진 상태 그대로 두는 것. 잘 다듬어진 문장보다는, 지금 이 시간의 온도가 남아 있는 문장을 선호하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감정이 크지 않다. 기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상태가 길게 이어진다. 대신 아주 미세한 감각들이 자주 스친다. 창밖의 빛, 키보드 소리, 지나가는 사람의 표정 같은 것들. 그 사소한 장면들이 하루를 구성하고, 하루가 다시 나를 만든다. 이 순환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디쯤 와 있는 건지 가늠해 본다.
이 글도 특별한 목적은 없다. 오늘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의 호흡을 잠시 기록해 두는 정도. 나중에 다시 읽게 된다면, 이때의 공기나 리듬이 떠오르면 충분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는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렇게 한 편의 글이 남는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가 가장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