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해서

by 고행복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이 그리고 그대들이, 우리가 참 대단하다. 어른인지 어른이 아닌지 잘 모르겠는 이 나이에 도달한 나의 짧디 짧은 생각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이 생애를 70년 80년을 살아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이 시간까지 살아내었는지, 새로 뜨는 해를 30 몇 번이나 바라보았는지, 앞으로 몇 번이나 이 햇살을 더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몇 잔의 커피를 더 마셔야 할까, 몇 병의 소주병을 더 비워내야 할까. (그런 면에서는 내가 그리도 혐오하고 싫어하는 ‘어른들을’ 참 존경한다.) 아무튼간 이 삶은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고 진부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냥 이렇게 1분 1초를, 하루 24시간을, 52만 5천6백 분의 시간을 아무 일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흘려보내거나, 마음속의 수많은 소음과 싸우거나, 예상하지 못한 에피소드에 당황스러워하는 나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 건가보다. 물론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도 먹어주고 싱어게인도 챙겨보지만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거다. 사는 게 엄청나게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다들 마음속에 지옥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더라. 수많은 음악이 희망을 노래하지만, 많고 많은 인생 강의에서는 소망을 전하지만 희망과 소망이라는 게 우리에게 있기는 한 걸까, 오늘의 태양은 사나웠지만 내일의 태양은 과연 온순할까, 우리들의 인생에 축배를 보낼 만한 일이 있을까.


허나, 지금은 우리의 생에에 연민을 보내거나 인생 타령이나 한탄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했던 그 희망차고 따뜻한 태양 속 ‘찰나의 순간’과 마주하고자 한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힘겹게, 치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이 삶을 살아왔지만, 다행히도, 이 생에 동안 빛이 나던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를 설레게 했던 무언가도 분명히 살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을 호흡기 삼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혹은 동아줄 삼아 살아가거나. 근근이 살아가거나, 혹은 사회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도망치며 살아내거나.


그렇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희망찬 기억이나 소중하고 따뜻한 추억 따위로 나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만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단지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 잡다한 것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숨어버린.’ 혹은, ‘완벽하게 도망친’ 우리 자신을 위해 건배하고 싶다. 나 홀로 숨바꼭질도 충분히 빛이 나니 말이다.


숨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숨어버린다’라는 문장 자체는 나 자신을 너무나도 겁쟁이로 만들어버린다. 패배자처럼 보일까 봐 무섭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그렇더라. 타인의 시선을 엄청나게 신경을 쓰니 말이다.

혹시 그대가 ‘숨는 것이’ 도망치는 것 혹은 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면 우리 조금 생각을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떨까.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안전한 곳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라고 여기는 것을 어떨까(빌 3:14) 물론,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묶어놓기도 하지만 말이다. (학업, 일, 육아, 회사, 인간관계.. 등등)

왜 ‘숨는다는’ 것은 피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도망가는 것처럼 비칠까, ‘숨는 것도’ 어쩌면 희망을 품은 행위이지 않을까.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그 보호가 나를 살리지 않을까, 살아난 나는 타인에게 한줄기 빛이 되지 않을까. 이 한줄기 빛은 결국 ‘숨었던 나’ 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학교에서 과제를 하면서, 물질의 성질을 ‘굳혀서’ 어떠한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아크릴’이라는 재료를 선택했다.(물론 뭣도 모르고 골랐지만)

[아크릴(acrylic) 아크릴로 나이트릴의 중합체를 녹여 실을 뽑은 합성 섬유를 통틀어 이르는 말. 아세트 비닐이나 아크릴아마이드 따위와 혼성 중합한 것이 많으며 양모와 비슷하여 가볍고 부드러우며 보온성이 좋고 산과 염기에 강하다.)’;네이버 국어사전]

화학 전공이 아닌 나는 다른 말은 다 필요 없고 ‘산과 염기에 강하다’라는 말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알기로 ‘산’은 굉장히 산성이 강하고 신맛이 나는 물질이며, 염기는 산과 함께 반응하며 마치 암모니아와 같은 독한 물질이다.

나는 이 아크릴이 어떻게 ‘산’과 ‘염기’에 강한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만든 작품은 ‘벽’에 관한 것이었다.


딱딱하고 막막한 ‘벽’을 보며 느낀 감정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벽.


벽은 나를 고독하게 하는 걸 수도 있고

나를 단단하게 하는 걸 수도 있고

나를 숨겨주는 것일 수도 있고

나를 쉬게 해 줄 수도 있다


벽에 기대서 쉬기도 하고

말 안 통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벽이랑 말하는 답답함도 느껴지니까


벽은 참 신기한 존재다.

(2021. 03.31)


우리의 벽은 무엇일까, 어디에 있었을까, 어떤 와중에 벽을 만났을까,

그 벽은 나와 어떤 대화를 했을까, 이 벽은 나의 어떤 꼴을 보았을까, 그 벽과 마주 할 때 나는 어떤 지경에 이르렀을까.


확실한 것은 그대의 벽이 어떤 벽이든 그 벽은 너무나도 견고한 요새라는 것이다.

나를 숨 쉬게 할 수도 있고, 아무도 모르는 나의 밑자락을 홀로 지켜주었으니 말이다.


당신의 벽이

그대의 인생의 벽이

우리의 마음의 벽이

때로는 너무나도 딱딱하더라도, 한 번쯤은 그 벽을 끌어안아보자.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 벽이 아무도 모르는 내 매트리스 옆 벽장이어도, 현관 앞 신발장이어도, 지하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 안이어도, 독서실 칸막이여도.


어쩌면 그 벽만이 나를 알 수도 있다. 나를 품어 줄 수도 있다. 나를 살릴 수도 있다.

그 벽을 적시면서 우리는 푯대로 향했을 수도 있다. 적셔진 벽은 우리를 따뜻하게 녹여주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를 살렸을 수도 있다. 그 벽이 우리를 바람으로부터, 폭풍으로부터 안전하게 숨겨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두 벽을 맞대 보자.



벽에게 감사를! 그리고

우리의 벽에 꽃이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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