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아름다움

정상과 비정상에 관하여.

by 고행복



불편[不便 :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로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괴로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따위가 편하지 않음.]


네이버 사전의 도움을 받아 단어의 뜻을 살펴보았다.


사실 나는 ‘불편’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불편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은 들지만, 지금은 ‘불편’에 대해 소심한 미화를 해보고자 한다.

언제나 다수의 취향과 생각을 따르는 것이 편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일단 지금의 나는 굉장히 불편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참고(화장실에 다녀오면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질까 봐) 내 앞에는 책상이 있지만 굳이 바닥에 앉아서 불편한 자세로

이 짓을 하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난 불편과 조금 친해질 마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보기로.


불편에도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을까, 불안에도 찬란함이라는 것이 있을까.

지금은 불편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주제가 그렇듯.


어쩌면 부적응자인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 누군가들을 위해서..

(술을 먹은 상태라 문맥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


1.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로움.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웬만하면 맛있고, 어떤 물건을 샀을 때도 평균적으로 만족하며 사용하는 편..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상품과 다른 상품이 택배로 왔을 때는 적잖은 불편을 느낀다. 예를 들면 옷의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편리하지 않은, 혹은 감성적이지 않은 물건이 올 때.

혹은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 혹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 자체에 대한 불편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고 괴로울 때는 어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럴 때는 굳이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지 말자.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할 때는 그저 거북 한대로, 괴로우면 그저 괴로운 대로.. 내 감정을 그대로 나 자신이 받아들여주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러니 애써 괜찮으려 하지 말자. 옷의 사이즈가 안 맞으면 어떻고, 주문했던 상품과 나의 필요가 다르면 어떠하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놓이면 어떠한가. 그저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을 한번 누려보자. 내가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냥 두자.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자. 그것이 어쩌면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자.



2.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괴로움

이것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많다. 늘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____나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 연민. 자기 연민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은 지금의 주제와 맞지 않으니 넘어가기로.

몸은 늘 피곤하고, 지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신체적인 증상으로까지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심장이 목에서 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던가, 누군가가 나를 바닥에 눕혀놓고 짓밟고 있는 생각이 든다던가,

먹고 있던 컵라면에 내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던가..(사실 굉장히 괴롭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까. 그리고 그 불편은 왜 항상 존재할까__우리는 그 불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이 괴로움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오직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를 가도 불편함은 따라올 것이고 우리는 늘 그 ‘불편’과 동행해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적는 것조차 불편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____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살자.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때부터 어쩌면 나는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1번과 같은 결론이네.



3. 다른 사람의 관계 따위가 편하지 않음

관계에 대해서는 전 연령층을 막론하고,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따라오는 불편함이 있다. 살면 살수록 더욱 그렇더라. 나의 배려가 왜곡되기도 하고,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어느새 무례한 사람이 되어있기도 하고,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며, 나의 진심과 전혀 다르게 비추어질 때도 있다. 심지어 사회의 구조가, 환경이, 우리의 얽힌 관계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불편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럴 때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작은 매뉴얼 하나를 알게 되었다. ‘비즈니스는 관대하게, 사적인 마음은 야박하게.’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드라마 마인에서)____ 사람 함부로 믿지 말자.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고 사랑할 존재이다. 어쩌면 믿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오직 그것이 관계의 불편함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 믿어보자. 이것만큼은 불편히 있지 말자.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____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미워하는 것도 질투하는 것도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탓하는 것도 결국___ ‘나’를 갉아먹는 것일 테니. 그러니 우리는 힘써 사랑하자.

결론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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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일까, 적응은 또 뭐며 부적응은 또 뭘까.

흔히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궤도에서, 부적응의 어떠한 순간을 두려워하며 적응의 순간으로 매 순간 우리를 밀어 넣는다.

우리의 유년시절이, 우리의 사회가, 우리의 어떠한 경험이 자꾸만 우리를 ‘정상적으로’ ‘평범하게’ 살게 한다. 그것이 정말 나 자신의 행복인지 아닌지 분간할 새도 없이.


한 번쯤은 불편한 느낌을 즐겨보자. 화성이 맞지 않는 불협이, 대비되며 부딪히는 색감이, 때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 ‘자유로움’을 나도 모르게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사회의 기준으로부터,

나도 모르게 세워온 나의 규칙으로부터 말이다.


가끔은 1+1=3이라고 주장해보자.

종종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불편한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에게,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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