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쉬어가기

자기에는 아깝고 놀기에는 피곤한 밤

애먼 밤중을 헤매는 이유

by 소감



만성피로에 절여진 나의 육체에게 개운한 기상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한낮의 나는 뾰족한 주삿바늘처럼 날이 서있다. 언제부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병적으로 예민했다. 상대의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사건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내 모습에 '내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라며 두려움을 느꼈다.


고민을 하다 정신과를 찾았다. 선생님에게 내 상황을 말했다. “선생님. 제가 요즘 너무 예민해요.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너무 화가 나요.” 이 말을 듣자 선생님은 내게 "잠은 잘 자나요?"라고 물었다. 내가 예민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지 잠을 못 자는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잠이요? 졸려서 눈이 감기는데도 제가 저를 안 재우죠."


"자신을 안 재운다는 말이 뭐예요?"


"11시가 되면 졸린데 침대에 안 누워요. 정말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유튜브를 보고요, 웹서핑을 하고요. 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뭘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 시간에 뭐라도 하나를 더 해야 돼요. 그렇게 자고 나면 개운하지 않고요. 자기에는 아깝고 놀기에는 피곤해요.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선생님은 나를 바라봤다.


"불면증이에요."


나는 내 옷깃을 여몄다.


"그건 잠을 못 자는 거잖아요. 저는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자요. 눕기까지 과정이 긴 것뿐인데요. 이게 불면증이에요?"


선생님은 나를 또렷하게 쳐다봤다.


"눕기까지 과정이 긴 것도 불면증이에요. 강박적 불면증이요."


선생님은 내게 약을 처방해줬다. 나는 그 날 집에 가서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약을 먹었다. 약을 먹은 지 한 시간 이내에 참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잠이 쏟아졌다. 핸드폰을 볼 생각도 못했다. 유튜브도 못 켰다. 나는 그 날 오랜만에 바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밤새 푹 잤다.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에야 어렴풋하게 내가 불면증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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