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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노 Feb 23. 2021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지럽기 싫어요 (1)

-이석증을 앓는 사람들



“…119죠? 구급차 좀… 보내 주세요.”

2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선명한 그 날의 기억.


그날은 프리랜서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온 힘을 쏟던 때라, 본가에서 명절을 지내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고, 간단히 저녁이라도 먹자 싶어 본가에서 챙겨 온 고기를 꺼내서 구웠다. 푹 쉬지도 못하고 돌아간 딸이 걱정되어 전화를 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만 해도 “난 괜찮아.”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때도, 앞으로도, 나는 괜찮을 줄만 알았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유OO로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갑자기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복통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몸속 장기들이 방금 먹었던 음식을 완강히 거부하여 모두 게워내는 동안 통증이 점점 심해져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어졌다. 일단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안정되긴커녕 똑바로 누워있을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좋지? 명절이라 본가에 돌아간 룸메이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주변에 당장 부를 만한 사람도 없는데 몸에서 흐른 식은땀에 옷이 젖을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결국 남은 힘을 짜내어 핸드폰을 부여잡고 119를 눌렀다. 태어나서 처음 눌러보는 번호다.


“네, 119입니다. 말씀하세요.”

“저… 여기… OOO동 O…번지… 배가 너무 아파요…”

“신고자분 본인이 아프신가요? 주소를 다시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금 갑니다.”

“네… O…번지… 구급차 좀 보내 주세요.”

“신고자분, 주소를 정확히 말씀해 주셔야 빠르게 출동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심한 통증 탓에 또박또박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지금 너무 아파서 말이 잘 안 나오는데 핸드폰 위치 추적해서 오시면 안 될까요?’라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서른두 글자를 내뱉을 시간에 두 자리 숫자를 말하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아서 최대한 또박또박 주소를 말한 후에 신고가 접수됐다. 전화를 끊으니 ‘OOO동 OO번지, 출동 중’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미 정신이 아득해져서 119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널브러지고 싶었지만, 그 와중에도 원피스 홈웨어 하나 걸치고 실려 가는 건 부끄럽다고 생각하여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야무지게 모자까지 쓰고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신고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119가 도착했고, 구급대원의 부축을 받아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삼 구급대원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명절 당일 저녁 시간대라 차가 많이 밀리지 않은 듯했지만,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구급차에서는, 홈웨어 하나 입고 실려 가기 부끄럽다며 옷을 챙겨 입은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구급대원이 건넨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몸을 뒤척이면서 구토를 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후 구급대원은 보호자 전화번호를 물어본 뒤 후속 조치를 하고 병원을 떠났다. 그때부터 한 시간 정도 나는 몸을 덜덜 떨면서 수액을 맞았다. 응급실의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 아빠가 병원에 도착했고,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정밀검사를 받기로 했다. 문진, 촉진, 피검사, 엑스레이, CT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병이 재발하여 생긴 통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모른다는 두려움에선 일단 벗어난 것이다.


그 후 나는 모든 일정을 급히 취소하고 2주 정도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제시간에 맞춰 약을 먹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래간만에 푹 쉬기로 마음먹고 잠도 실컷 자고 밀린 드라마를 보면서 지냈다. 그동안 일만 생각하느라 몸을 혹사한 걸 반성하고 앞으론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뒤척인 순간,


“어? 어어어?”


종이가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난데없이 눈앞의 세상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려고 해도 눈의 초점을 맞출 수가 없었고 초점이 심하게 떨렸다. 마치 동공을 지탱하는 끈들이 탁-하고 끊어지면서 동공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너무 어지러웠다. 어떻게 된 거지? 단순한 빈혈이나 일시적인 시력의 문제라기엔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지병은 둘째치고 뇌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119와의 통화 내용과 문자 메시지 내용은 명확하게 기억나질 않아 실제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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