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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닉씨 Mar 12. 2018

그냥 ‘먹고’사는 이야기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순간



브런치에 글이 뜸했다.

사실 ‘작가의 서랍’ 속에는 쓰다만 글, 휴대폰 메모장에는 끄적거린 몇 가지 키워드와 주제, 그리고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이 잔뜩이다. 글이나 말의 형태가 아닌 이미지나 단어 정도로만 표현해도 찰떡같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평범함을 비범하게 표현하는 능력, 아니면 진짜 특별함. 오직 그것만이 답일까.



브런치를 훑다 보면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때는 왜 내게는 특별한 인사이트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을 모으기는 하는데, 글로 옮기기엔 영 마뜩잖다. 힘을 좀 빼보면 어떨까. 어느 사실이나 정보 너머 그럴싸한 통찰과 사색이 아닌, 그냥 툭-하고 치면 나올 말을 늘어놓아 본다.




'먹고'사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먹고사는 이야기가 제법 달아오른 모양이다. 사실 나는 이 브런치에서 평범하게 먹고사는 나의 이야기를 더 특별하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감히)귀감을 줄 정도로 멋들어지게 꾸며볼 요량이었다. 그냥 먹고사는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라 시시하게 느껴지고, 예쁘게 차린 밥상과 같은 특별한 것이 아니면 뭐든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뜬금포지만 글도 요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지난 10월을 끝으로 글을 게시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작가의 서랍 속에는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한 게시글이 여러 개가 차곡히 쌓여갔다. 아마 브런치팀에서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임시저장’이라는 버튼을 버리고 그럴싸하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나 빨빨거리면서 여기저기 기웃대는 걸 좋아하는 내가 몇 달을 그저 멍하니 맘 편히 지내다보니 이렇다 할 인사이트가 없어진 것도 한 몫했다. 더욱이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양념을 치려니 스스로 어색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는 살았다


이게 핵심이었다. 먹고사는 건 쉬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먹고' 산다는 것을 말이다.


휴대폰을 들어 간간이 찍어두었던 밥상 사진을 살펴보았다.

매해 사야해뽕을 맞은 제철 식재료는 물론, 매주 작심 하루로 끝나고 마는 월요일의 다이어트 결심,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챙겨 먹자는 어떤 의지, 냉장고를 터는 바람에 억지로 욱여넣은 음식도 맛있다는 자아도취의 최면, 그리고 대부분 맥주를 곁들인 반주의 흔적까지, 이렇게 육 개월간 짧은 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밥상. 이 밥상 위엔 나만이 아는 당시의 마음가짐이나 철학이 담겨있다. 사진 속 요리만 보고도 그때의 상황이 짐작된다. 이렇게 꾸미지 않고 솔직한 일상의 즉흥적 행위가 또 있을까.


결국 뻔한 결론이다. 먹고산다는 건 삶 그 자체이다. 비약하자면 먹고사는 걸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다. 고로 먹고사는 것을 포기할 리 없다. 이것에 있어서는 한치 양보나 후퇴도 있을 수 없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울고 싶은데 웃고, 찌질한데 쿨해진다. 질척거리고 싶은데 단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이렇게 절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해서 특별하지 않게 느껴져 아쉽다.

그래서 우리는 값비싼 레스토랑이나 어느 미식회의 맛집라는 데에서만 먹고사는 이야기를 내놓는다. 나도 그렇다. 먹고사는 이 평범하기만 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하게, 재미있게 꺼낼까 하다가 결국 나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점차 평범한 이야기는 사람의 입에서 감춰지고, 급기야 대충 꺼내먹는 집밥의 가치는 ‘무성의’하게 느껴진다. 특별하지 않은 이것(밥상)이 때론 무성의한 삶을 살아가는 것만 같은 이상한 패배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꼭 특별해야만 할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어쩌면 먹고사는 것이 특별함 그 자체가 아닐까. 같은 맥락으로 나는 맛집을 잘 찾지 않는다. 


오늘 점심 도시락을 떠올려본다.

주말 내 과식한 짐을 덜어보겠다고 싼 심플한 도시락. 일명 월요일 반성의 도시락이라 불리는 이 평범한 한 끼에 오롯이 담긴 특별한 생각을 말이다. 평범하지만 내게는 특별한 도시락.




그냥 먹고 지낸 지난 육 개월의 드문드문한 기록입니다. 사실 찍는 순간에도 나름 평범한 걸 걸러내는 작업을 했겠죠. 사진에 방해되는 주변을 정리한다거나, 수저를 올곧게 다시 놓기도 하고. 색감도 정리해봅니다.  그리고 대충 올린 반찬과 밥 사진은 아예 찍지도 않았겠지요. 그래서 너무 뜸했나 싶어요.


휴대폰으로 찍은 건 질이 많이 떨어져요!

10월부터 3월까지, 시간 순서대로, 평범하지만 특별한 밥상



글과 사진 | 오가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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