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퇴사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지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은 인천에서 출발해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을 거쳐 레이캬비크로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샤를드골의 환승은 복잡했다. 나는 공항에도 여행에도 익숙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외국인이 길을 알려주었다. 계속 눈에 띄는 걸 보니 같은 방향같은데 내가 계속 헤매니 안타까웠(?)나보다. 레이캬비크 행 탑승구를 찾아가거 비행기를 기다리며 자신은 페루에서 왔고 배를 타고다니며 일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디서 왔냐고,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왔다. 그렇게 이런저런 오고가는 대화를 끝내고 그 짧은 시간동안 두가지 생각을 했다. 한국에 가면 영어공부를 하리라는 막연한 다짐, 그리고 어떤 일을 하냐는 질문을 받으며 떠오른 떠나온 내 일터를 생각했다.
나에게는 이번 여행을 떠나는 시기는 퇴사와 입사 사이 인생에서의 '환승'을 거치는 시기였다. 비행기 표를 끊을때만 해도 이직준비와 일상생활이 너무 길어 대책없이 여행을 결심한건데, 다행히도 여행을 떠나기 전 새롭게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전의 회사에서는 4년 이상 재직했었다.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직원이 스무 명도 안되던 회사는 그동안 어느덧 팔십 명 가까이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나는 성장했을까 의문이 들었고 내가 모르는 일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그래서 오랫동안 준비했고 동료들하고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었었다. 나만 퇴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팀원들도 안 울거니까 서운해하지 말라고 했다. 잘된 거라고 했다.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막상 다가온 그 날은 너무너무 슬펐다.
같은 날 퇴사하는 같은 팀 동료가 마지막으로 책상을 정리하면서 흐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우리 팀 팀원들은 모두 또래였다. 어린 여자애들끼리 일한다고 얕보일까봐 더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우리팀은 고3같다는 별명도 있었다. 매일의 성과가 고스란히 숫자로 보이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며 진지하고 열중해서 일했었으니까. 재밌는 건 쉴때도 고등학생처럼 낙엽만 보고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야자시간을 함께 한 여고동창들처럼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유치하게 지냈던 끈끈함은 내가 이곳을 떠나기를 끝내 망설이게 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 시간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울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마치 졸업식을 할때처럼 다시 못만날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같이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 엉엉 우는 못생긴 사진은 박제되어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입사 전 스탑오버를 거치면서 나는 프랑스에서의 진짜 환승을 하며 나는 목적지 레이캬비크에 더 가까워진다. 내 인생도 또 다른 목적지로 향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