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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Aug 13. 2019

담담한 건 만수가 할게,답답한 건 독자가 할래?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 성석제, <투명 인간>


 도입부는 투명인간을 발견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투명인간을 낳은 모친 역시 투명인간이 되었다며, 투명인간 '만수'의 출생당시를 회고한다. 그리고 나서 계속해서 행 나눔으로 시점이 바뀌면서 만수가 어떤사람인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만수라는캐릭터가 조각된다.


만수는 멍청하고 바보같지만, 아버지를 따라 밖에 나가면 꼭 가족들의 먹을거리는 들고오는 사람이다. 가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위하는 대목은 어느 에피소드에나 등장한다. 그런 착한 심성은 주위에도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만수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만수는 현대사의 질곡과 그 속에서 무너저내린 구조의 희생양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당하며 점점 더 괴로운 삶을 살게 된다. 수십명 정도 등장했을 화자들이 아무도 갖지 못한 점을 지닌 만수조차도 가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결국 가족들의 생계를 떠맡고, 동생으로 인해 모진 고문을 당하고, 회사에게 속아 수억의 빚을 지게된다. 


 소설 속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은 투명인간이 된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어린아이의 지능을 갖는 장애를 가진 명희언니 또한 투명인간이 되면서 유아의 정신을 가진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만수의양자인 태수와 양어머니 송진주 또한 서로의 갈등이 폭발하고 나서 투명인간이 된다. 어쩌면 이들은 갈등의 극복을 통해 자유의 상태가 된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만수는 어느날 투명인간이 되었고, 그 마저 차에 치인다. 하지만 정말 차에 치였을까?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듯 독자에게는 보이지않는 어떤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만수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시점에서 만수라는 캐릭터가 조각된다. 그러나 만수 본인의 생각은 나오지 않고, 화자들의 입을 빌려 말할 뿐이다. 그때마다 만수는 정말 담담하다. 책임감때문에, 가족때문에 그저 힘들어도 묵묵히 참기만 한다. 군사정권 하의 군대식 학교 체제에서도, 회사의 부조리함앞에서도 그저 담담하다. 사는 것 보다 죽는게 어렵다고 말하는 만수는 더 열심히 살 수는 없을정도로 고된 삶을 살아간다. 그 와중에 답답한 건 나인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만수를 보며, 괴롭고 답답하다. 그리고 그것이 만수만의 인생이 아니기에, 나는 더욱 더 답답해진다.


 소중한 가치를 알고 지켜나가는 만수와 이를 탄압하는 사회들. 보면서도 마음이 아려서 제발-제발-하고 눈을 질끈감고 다음장을 허겁지겁 읽어나가다보니 어느새 허망한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붙잡고 있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없다. 함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 뿐이라는 저자의 말이 다 읽고나서는 와닿는다. 이러한 힘든삶을 한번에 살았던 사람이 없길 바라보지만 그 시절, 아니 지금도 누군가는 만수로 살고 있을 것이다. 또는 나 역시 만수였던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함께 있다는 어깨동무 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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