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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Aug 30. 2019

(진짜로)운수 좋은 날

day4. 이 모든 걸 알게된 이 순간이 행운이야.

우리의 여행 뒷풀이마다(여행은 끝났지만 매번 뒷풀이가 진행되고 있다...)빠지지 않는 웃음포인트는 가장 맘고생, 몸고생한 이른바 '태초의 자연'이다.


덩실덩실 춤을 추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산속의 아늑한 숙소, 다시 만난 놀라운 폭포 앞에서의 말잇못 포인트... 그리고 마치 우리를 위해 개방한듯한 -평소에는 길이 위험하여 폐쇄되어 있는 날도 많다고 한다- 눈부신 전경의 피야다르글리유프르도 봤겠다(sunnyi님과 dana님의 앞 글 참조)  내친 김에 파그리포스라는 폭포에 가려다가 만난 묘한 초록색의 동산들.(dana님의 앞 글 참조) 그리고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우주먼지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투른 우리들처럼, '아이슬란드는 처음이라' 헤매는 여행자들은 우리 인간의 멘탈을 박살낸 이곳을 '태초의 자연'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도착지에 가기 위해서 네비를 켜봐도 길 한복판에서 알려주는 메시지라고 보낸 것이 "You have arrived!". (저 느낌표까지 얼마나 얄밉던지). 구글지도에서 위치 설정을 다시 해봐도 계속 3km만 더가면 된다고 나올 뿐이고... 설상가상 더 들어가니 인터넷조차 잡히지 않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내륙 산의 색은 그동안 봤던 산의 색과는 다르게 더 오묘하고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우리 몸을 이완시키다 못해 힘이 빠지게 하는 색으로 뒤덮인 곳. dana님의 글처럼 퍼핀도 아닌 눈이 시뻘겋고 부리도 다부진 그 새만이 있는 이 곳... 인터넷과 전화마저 되지 않아 외부와 거의 차단된 이 곳. 오바 조금 보태서, 여기서 우리가 있어도 아무도 우리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문명이 닿지않는 느낌의 이곳, 그래 이것이 진정한 '태초의 자연'이다!!! 아무것도 손쓸 수 없는 막막한 이 곳에서 무사히 차를 돌려나오면서도 우리의 멘탈은 탈털려 기진맥진해졌다.


더 오묘하고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우리 몸을 이완시키다 못해 힘이 빠지게 하는 색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기가 빨린 채 태초의 자연을 뒤로 하고 나왔다. 정말 귀신에 홀린 듯, 나올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금만 더 달리니 금세 큰 도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


 들어갈 때는 얼마나 걸릴지, 어디로 갈지도 알 수 없어 더듬더듬 40분은 걸려서 진입한 것 같은데, 나올때는 바로 코앞이었던 양 바로 출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측'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헛웃음이 나면서 보잘것 없는 인간이지만 더욱 더 의지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의 생각과 의지라는 생각에 조금 더 무력해졌다.


 하지만 벌써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아직 해는 쨍쨍하기만 했다. 내가 그토록 기대하던 아이슬란드의 백야의 묘미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시간을 많이 보내도 계속 낮인듯한 이 느낌!(이미 오후 5시는 되었을 것이다) 해가 지면 모든 걸 접고 돌아가야하는 평소와는 달리 빛과 함께 더 많은 기회들이 쏟아질 것 같은 백야. (그 덕에 우리는 밤 열시에도 밝은 창에 잠을 설쳤지만)  우리는 백야의 버프를 받아 + 특유의 깨발랄함으로 우리는 다시 기운을 내서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맞이한 어마어마한 오늘의 숙소 뷰! 허허벌판에 있는 포스호텔 누파! (사진출처:호텔스닷컴)



이 곳은 그야말로 태초의 자연을 넘어, 지구가 아닌 '화성 뷰' 호텔이었다



이 사진의 노란모자 우측 상단, 사진의 중앙쪽에 길게 늘어서있는게 '포스호텔-누파'이다.

여기서 보는 뷰는?

보통때는 잘 찍지않는 파노라마. 그렇지만 벅찬 시야를 담으려면 이 방법 뿐이였고 역시 실물은 따라갈 수 없다.

이렇게 사방에 아무것도 내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저 시력이 허락하는 한 멀리멀리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우리는 또 언제 태초의 자연에 기가 빨렸냐는 듯이, 화성뷰라며 신이 난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그 와중에 바닥에 밟히는 이끼들이 마음에 걸렸던 sunnyi님은 조심조심 걸어다니며 이끼들을 살피셨다.


 하늘과 태양, 그리고 솟았다가 낮아졌다 높아지는 땅. 그 뿐이다. 우리 호텔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 호텔이 있다니 싶고, 이런 곳에 우리가 있다니 싶을 뿐이었다. 이런 곳들이 곳곳에 있으니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었겠구나 싶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내린 결론. 여기는 이 세상 경치가 아니다! 계속되는 대낮과 계속되는 땅, 하늘, 바람. 자연의 유한하지만 무한한 존재가 느껴졌다. 서울에서 보는 아파트 화단이 아니라, 넓은 땅과 풀들. 우리는 얼마나 이런 것들에서 멀리 떠나왔는지. 우리나라도 다 못돌아다녀봤는데, 그 곳에서 열 몇시간을 날아 온 이 곳에는 더더욱 내가 상상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니. 지구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이 얼마나 많을까. 늘 알던 곳만 다니던 나에게, 내가 모르는 곳이 무한하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서울에서,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벗어나 아이슬란드에서, 그러한 나라들이 몇 백개가 있는 이 지구. 그 안에 사는 작은 먼지이면서, 감히 화성까지 상상하는 상상력을 가진 우리들. 그런 작은 존재들에게 얼마나 많은 짐과 고뇌들이 있는지 대자연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안다. 그렇지만 너무 골치가 아플 땐 구글지도를 보자. 지도 속의 우리가 모르는 곳들에서는 또 우리가 모르는 많이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타수업을 졸업하며 작게 연주회를 하며 노래를 썼었는데 그때의 노래 제목도 '구글지도' 였다. 구글지도를 오므려보면 그 지도 안에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잡아먹힌 도도새, 집을 잃은 북극곰들도 있다. 빚이 많은 사장님도 있고, 야근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어딜 돌아봐도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도 비슷했다. 어찌어찌해도 지구의 하나, 태양계의 먼지의 먼지도 안되는 우리들에겐 인생이 정말 힘들고 괴롭지만 원래 쉬운 일은 하나도 없으니, 먼지같은 우리들처럼 우리 고민도 먼지처럼 작아졌으면 하는 마음.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지으며 어느 새 멘탈을 회복하고, 저녁을 먹으니 계속될 것 같던 백야도 조금씩 노을이 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아침 ALL RIHGT! 을 외쳤던 것처럼,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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