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솜구름만 보면 네 생각이 나겠구나
어제. 비가 그치고 하늘에 솜구름이 둥둥 떠 있던 날,
17년을 함께 한 강아지 콩이를 하늘로 보냈다.
이른 아침 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소식을 듣고
친정으로 향하는 차 안.
하늘색 바탕에 떠 있는 하이얀 구름을 보고 있자니
나올 채비를 하느라, 아이를 챙기느라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둥둥 떠 있다가 흩어져 가는 저 구름의 모양이
너무도 너 같아서.
말티즈 콩이의 하얀 솜털과 같아 보여서.
막 살갑게 정을 나누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콩이는 명백한 우리 가족, 내 가족이었다.
친구를 통해 얘기를 듣고
여러 번 파양 된 강아지를 데려온 것도 바로 나였고
그럼에도 제일 무관심하게 대했던 것도
바로 나였다.
첫눈에 바로 호감이 가는
하얗고 귀여운 말티즈의 외모에,
사람을 낯가리지 않는 성격까지.
사실 매력 투성이인 녀석인데
왜 오구오구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하고
데면데면 굴었을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은 모른다.
그래도 엄마, 아빠, 언니 품에 꼭 안겨서
충분하게 사랑받고 관심받고
편안하게 지내는 걸 보면
나도 참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17년. 그 긴 세월 동안 콩이는
나의 미숙한 20대를 지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30대까지 지켜봐 주었고,
그 아이가 4살이 되어
뛰고 말하고 콩이와 유대를 쌓을 때까지도
우리 가족으로 함께 해주었다.
세상을 떠난 마지막 모습까지도
들판에 핀 작은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웠던 콩이.
내 아이의 마음에도
처음 만나 많이 좋아했던 강아지로
큰 의미가 되어준 콩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더 먹먹하고 공허한 건
슬픔의 크기가 그만큼 커서.
네가 있어준 자리가 그만큼 커서 그런 거겠지.
콩이는 내가 어떻든
늘 가족의 이름으로
늘 그 자리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남아 더 가슴이 아프다.
아직 죽음이라는 개념이 어려운 4살 아이가
밤에 잠들기 전 얘기한다.
콩이가 작아져서 미워.
사진 말고 만나서 보고 싶어.
콩이가 많이 아파서 미워.
하늘나라로 가서 미워.
밉다는 말에 뭐라고 대답해 주면 좋을지 당황스러워
챗gpt를 찾아보니 이런 답변이 나왔다.
“응. 미울 만큼 많이 보고 싶은 거야.
그만큼 우리 마음이 콩이를 정말 많이 사랑했나 봐.”
미움은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그리움의 다른 얼굴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콩이가 아직 있으니,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으로 만나고
콩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야겠다.
이별도 사랑의 한 부분임을 배울 수 있기를.
‘이별 = 불안’ 이 아니라
‘이별 =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으로 연결되기를.
(미안하다는 말은
네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닐 것 같아서)
고마워 콩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
더 이상은 아프지 말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잘 있다가 마중 나와줘.
우리 다 같이 꼭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