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매일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젊음과 건강을 잃어가는 것, 혹은 사고나 장애로 인해 신체적 기능을 잃는 것일 수도 있고, 통장의 잔고가 서서히 사라지거나 전 재산을 잃는 등 물질적인 것일 수 있다. 또한 영원한 사랑일 것만 같던 사람과의 이별,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지는 것, 한때 부부였지만 법적 절차를 통해 이혼을 하면서 남이 되는 등 관계에서 오는 상실, 가족이나 가까운 이, 소중한 가족이었던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신이 일했던 직장을 떠나거나 오랜 시간 살아온 주거지를 떠나면서 느껴지는 상실,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으며 계획했던 일을 포기하게 되면서 오는 상실 등... 우리의 삶 속에서 상실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과제이며, 다양한 감정과 심리적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상실을 경험했고, 앞으로도 크고 작은 상실과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나는 가끔 인간이 겪는 다양한 상실들 중에 어떠한 상실이 가장 큰 고통을 유발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는 한다. 물론 상실에서 오는 고통의 무게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상실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며, 그중에서 자식의 죽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자녀가 없지만 상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미국의 영화배우 그레고리 펙은 아들이 죽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를 매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시간 생각합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죽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고통과 슬픔이 있고, 도저히 떠나보낼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상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뿐 아니라 모든 상실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며, 애도란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그 시간들을 잘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야 잘 떠나보낼 수 있고,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감정들이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고통이 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애도는 상실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쏟아부었던 애정과 사랑의 깊이, 고통을 견디는 능력과 개인의 성숙도에 따라 그 기간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상실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그 누군가가 앞에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처음엔 당혹스럽거나 측은지심이 들 수도 있으며, 왠지 그 마음이 어렴풋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아 공감하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위로의 방식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언어적인 표현과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적 표현에는 그 감정들을 반영해 주거나 공감해 주는 말, 상대에게 방향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조언 등이 있고, 비언어적 표현에는 함께 눈물을 흘려주거나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 가볍게 등을 토닥여 주거나 안아주는 것, 곁에서 묵묵히 함께 있어주는 것 등이 있다. 내가 열거한 비언어적 표현은 다소 친밀하고도 가까운 이들과의 사이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상실로 인한 어려움 가운데에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고, 반대로 그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넨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어떠한 위로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그리고 나의 위로에 고마움을 표현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그것은 결코 거창한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작은 행동이었고, 힘든 시간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이와의 거리가 가깝건 아니건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건 아니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무쇠는 식었을 때 두드려라”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에는 시기와 순서가 있으며, 감정에 압도되어 있는 사람에게 이성적인 조언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조언이 타당하고 일리가 있고 없고는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겪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섣부르게 ~은 ~이니 ~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때때로 조언을 가장한 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을 위로와 조언으로 받아들이고 말고는 결국 각자 개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어떠한 상실도 가볍거나 쉽지 않다. 또한 그것들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등의 감정을 수반한다. 다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만 피할 수 없는 상실을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상실에 처한 나 자신과 그 누군가에게 어떠한 위로를 건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