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치료사로 일하는 동안 코리더와의 초반 관계 설정, 내담자와의 초기 관계 형성(아동의 경우 부모 포함), 기관과 초기에 명확하게 논의되어야 할 주요사항 등 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새삼 크게 깨닫게 되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라는 속담이 있듯 처음은 어느 곳, 어느 관계에서나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초보 치료사 시절에(지금도 초보이지만 지금보다 더 생초보 시절을 말한다) 초반의 관계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그중 코리더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코리더로 활동했던 적이 있었고, 리더 치료사가 된 이후로는 여러 명의 코리더 선생님들과 함께 일을 했었다. 코리더 선생님이 오시면 세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코리더의 역할, 즉 코리더의 임무와 주의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해 초반에 명확히 안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코리더가 주 치료사의 동료 치료사 이거나 주 치료사보다 나이가 많을 경우 더욱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부분을 간과하여 미술치료가 진행되는 몇 회기 내내 애를 먹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서야 코리더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느라 상당히 껄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코리더로 오시는 선생님들이 의례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겠거니, 주 치료사의 입장을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은 금물, 크나큰 오산이다. 그들도 초보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이로 인해 서로가 불편하지 않으려면 코리더에게 치료실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해 초반, 첫 회기가 시작되기 전에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좋다.
또한 내담자와 초기에 형성되는 관계는 치료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내가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비교적 초창기에 만났던 아동들은 아직도 내게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집단미술치료의 집단은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아주 강력한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회기부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나를 간보던 녀석들에게 나는 말 그대로 말렸고, 치료가 진행되었던 8개월간 치료사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참 많이도 휘둘렸음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없다. 가장 중요했던 1회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좋은 치료사의 이미지로 보여지고 싶어 아이들의 눈치를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실력의 부족이었을까? 그날 처음 만난 치료사이자 어른을 향한 아이들의 무례함과 횡포를 눈감아 주었던 일의 결과로 치료는 초보 치료사가 겉잡기에는 너무나 멀리, 산으로 가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초반의 라포 형성을 위해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유지하되, 지켜야 할 경계를 함께 설정하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게 되었다.
위에 말한 집단 아동들과 만난 첫 회기에 집에 돌아와
작업한 나의 반응작품
치료시간이 나에게는 어둠같이 느껴졌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표현했던 반응작품
아이들에 대한 나의 분노가 표현된 반응작품
기관과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치료 업무와 치료 일지를 작성하는 일 이외에도 또 다른 업무사항은 없는지, 미술재료에 대한 지원은 얼마만큼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급여 지급은 어떠한 기준에 의한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그리고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이 부분 또한 크게 배우게 는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위에 열거한 사항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급하게 일을 시작했던 나는 수시로 상식 밖의 부당한 업무를 요구 받았고, 말도 안 되는 근무환경에서 일을 하다가 계획했던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상태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기관을 나왔던 경험이 있다. 그때 나 자신에 대해 가장 먼저 화가 났었고, 그다음으로는 기관의 대표에게 굉장한 분노의 감정을 느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 기관과 일하며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 뒤돌아 보게 되었다.
초반의 관계 설정은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중요하다. 말하기가 어렵고 불편해서 또는 말하는 자신이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등의 이유로 초반에 놓친 것들은 나중에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또한 바로잡으려 할 때에는 감정적으로도 매우 어렵고,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명확한 초기의 관계 설정은 곧 치료사 자신을 위한 ‘안전한 보호장치’이다.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이후에도 나는 가끔 깜빡 잊고 ‘아차’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되도록이면 빠르게 나의 요구 사항과 미안함을 진심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때로 사소한 것들까지 직접 겪어보고 아프게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나 자신에게 놀랍기도 하지만...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체득한 것만이 진짜 내것이고, 오래도록 확실하게 남는 법이라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오늘도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