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낭만 그 언저리에서

내 안의 경계를 허무는 하루가 되길

by 숨결

최근 병원 검사와 진료 사이, 잠시 발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오래된 돌담길이 나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가을 햇살이 스민 돌담길을 보자, 차디찬 진료실에서 느낀 긴장과 차가움이 햇살과 함께 증발한다. 돌담 너머에 위치한 덕수궁을 바라보며, 나와 나 사이의 경계가 돌담으로 세워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돌담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시간을 품은 거리, 정동

프랑스 공사관 터, 구 신아일보사 별관, 그리고 캐나다 대사관까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남겨진 건축물들은 한 나라의 역사이자, 동시에 개인의 기억과도 닮아 있었다.


세월을 닮은 나무

길 위에서 마주한 우람한 나무, 하늘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치솟은 보호수는 내 시선을 압도한다.


어떤 인내와 힘으로 숱한 세월을 버텨냈을까.

굽이진 가지마다 묻어 있는 아름다움과 굳건함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메시지를 전한다.


커피 한 잔의 낭만

걸음을 멈춘 곳은 ‘커피 루소’.

넓은 공간과 통창 너머로 들어오는 초록빛 풍경, 파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작은 세라믹 찻잔에 담긴 필터 커피 한 잔이 삶을 새롭게 물들인다.


여분의 커피가 담긴 투명유리보틀의 커피를 찻잔에 부을 때 흘러내르는 소리, 한 모금 한 후 잔이 접시에 닿을 때 울리는 소리가 감각을 미세하게 깨운다.

마치 고요 속의 싱잉볼처럼

내 앞의 찻잔은 나에게 또 다른 명상의 길로 안내하며 의식을 보다 명료하게 한다. 감각이 확장되고 깨어나니 작은 행동들이 설렌다.


콜롬비아 디카페인 한 잔,

‘고소하고 달콤 씁쓸한 애프터’를 남기는 커피 향은 내 안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가볍고 깊은 커피 한 모금이 감각을 깨우고 섬세한 사유를 불러온다.

오늘의 세라믹 찻잔의 명상


에필로그

마치 개화기의 시간 여행을 한 선물 같은 하루.

일상의 아픔 속에서도, 나는 의식적으로 낭만 한 스푼을 채워 넣는다.


조금 더 삶이 가벼워지고, 경쾌해지고, 질감이 바뀌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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