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 지성의 실패

과거와 현대를 잇는 여성의 자화상

by 숨결

1. 서두 : 첫 만남의 충격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를 읽으며, 나는 오래전 내 삶을 거울처럼 마주한 듯했다. 겉으로는 안정된 결혼생활, 아이들과 가정, 사회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일상. 그러나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수전 역시 그랬다.

그녀는 달콤한 웃음을 건네는 남편 매슈 곁에 있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기쁨이 아니라 역할의 교환에 불과했다. 사랑이 아니라, 의무와 표정과 시선으로만 유지되는 관계. 이것은 지성이 실패한 삶의 자화상이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두사람의 삶은 자기 꼬리를 문 뱀과 같았다.
지성이 그런 단어들을 금지했다.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

2. 표정과 시선의 언어

매슈가 모험(불륜)을 즐기고 돌아오면, 수전은 만족보다 괴로움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남편의 부루퉁한 얼굴, 힐끗거리는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철저히 감시받는 아내임을 느꼈다. 사랑은 이미 증발했고, 남은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옳지도 않은 상태였다. 매슈의 불륜에 크게 개이치 않고 정상적인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냉정함과 무심함이 잠재적 괴로움으로 읽힌다.


3. 자유의 낯섦과 두려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며 수전에게 드디어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것은 해방의 기쁨이 아니라 공허와 초조였다. 정원은 그녀를 위로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적’처럼 그녀를 위협하는 낯선 장소가 되었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가, 왜 두려움으로 다가왔을까? 그것은 이미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긴 세월 때문에, 자유를 받아들일 근육이 마비되어 버린 탓이었다.


4. 차분한 엄마의 첫 고함

수전은 어느 날,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고함을 질렀다.

사소한 장난에도 폭발한 자신을 보며 그녀는 충격에 빠졌다. 아이들의 “괜찮아, 엄마”라는 말조차, 그녀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들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코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매슈는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가볍게 넘겼다. 수전의 내적 절망은 가족 안에서도 결코 이해받지 못하는 고립이었다.


5. 불륜과 정상성의 가면

매슈는 나중에 수전에게 제안한다.

“우리, 넷이서 같이 더블데이트를 하는 게 어때?”

이 말은 곧 수전의 새 애인 + 매슈의 애인, 불륜 커플끼리의 사교 모임을 의미했다. 매슈에게 불륜은 죄책이 아니라, 정상 부부의 가면을 쓰기 위한 합리화였다.

그에게 사랑은 이미 체면과 균형의 문제일 뿐, 두 사람의 내적 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6. 수전의 절규 – “나는 혼자야

수전은 결국 속으로 외쳤다.


나는 혼자야, 나는 혼자야, 나는 혼자야


그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새로운 사랑도, 남편의 합리화도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공간 – 19호실이었다. 그 방에서만 그녀는 아내도 엄마도 아닌, 한 인간으로 살아 있을 수 있었다.


7. 결론 : 우리에게 19호실은 무엇인가

도리스 레싱은 묻는다.

우리는 진정 혼자가 될 수 있는가?

자기 자신과 마주할 용기 없이, 가정과 사회의 가면만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전에게 19호실은 자유와 파멸이 교차하는 방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질문은 남아 있다.

“내가 찾고 있는 나만의 19호실은 어디인가?”


마무리하며

<19호실로 가다〉는 결혼과 사랑, 자유와 고립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더 깊게는, 여성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수전의 절규는 곧 나의 절규이기도 했다. ‘나는 혼자야’라는 문장을 끝내 외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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