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정신건강의학과에 문을 두드리는 날〉

by 숨결

춘희가 순희학교에 출근하자 예술계 동료교사 효린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오전 담임 업무에 정신이 없을 텐데 효린은 수업 준비를 위해 효린을 알뜰살뜰 챙겼다. 바쁜 와중에도 짧은 시간에 효린은 밀도 있는 대화를 시작했다.

“선생님께 처음 말하는 거예요.”

효린은 자신의 병력을 먼저 꺼내고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았는지를 리스트를 공유해 주었다.


치료를 잘한다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리스트가 적힌 포스트잇을 받고 춘희는 생각했다. 진료를 받는 일이 막연하고 답답했는데 길이 열리긴 하는구나 …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춘희는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효린이 추천한 병원은 상급병원이었다.

지역 의원의 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정신질환 중증환자일 경우에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중증환자가 아니어서 다행인 걸까 “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신경과 진료를 받던 병원 로비에 걸려 있던 배너가 문득 떠올랐다.


이번 달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시작된다는 안내가 적힌 스탠드 배너


치료가 필요한 시기에 딱 맞춰 오픈한 정신건강의학과

뭔가 시절 인연처럼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초진 날, Beck 우울·불안 검사를 먼저 진행했다.


진료실 안에는 춘희 보다 5살 연상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차분한 시선과 목소리로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는 표정으로 춘희를 바라보며 모니터에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춘희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울음이 분노와 억울함이 한데 엉켜 솟구쳤다.


누군가가 내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처음으로 하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춘희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는 지금 괜찮은 걸까.?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춘희는 학교에서 겪은 재난 같은 순간들을 이어가며 하염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30분 넘게 이야기했다. 의사는 말을 자르지 않고 끝까지 들은 뒤“많이 힘드셨겠어요”라고 낮게 말했다. 그리고 핵심적인 사안을 컴퓨터에 기록하는 듯 타자를 쳤다.


기록을 마친 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당분간은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춘희는 전문의의 멘트가 합법적인 허락처럼 들려 걱정하고 긴장하던 마음의 짐이 툭 풀어지듯 했다. “내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었구나. 휴우~~ 다행이다. ”춘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6개월 진단서가 발급되었다.


진단서를 받아 드는 손이 가볍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힘겹게 간신히 버티고 있은 내 상태를 이해받는 기분이었다. 이 종이 한 장으로 나는 그제야 설명 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진단명은 ‘중증의 우울 에피소드’


내가 정신질환의 병을 학교에서부터 얻었다는 사실이

현 상황에서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이 고통은 근거 없는 나약함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