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서재 1. 나르시시즘의 심리학_샌디 스테이플러

나를 향한 치유의 여정

by 숨결

나의 첫 번째

서툰 서평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작가와 출판사에 대한 저작권 공부를 충분히 안 한 상태이긴 하나

내 삶의 수많은 관계의 어려움의 원인을 나르시시즘의 개념을 통해 정리가 되어서 나처럼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여 나의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해 보려고 한다. 작성하다 보면 서평 작성이 좀 더 안정적으로 발전하리라 믿으며..... 먼저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서 읽어보고 소장 가치가 있으면 구입을 하는데

최근에 그 가치를 알게 된 서적이다. 이제 다시 펜을 들고 정독을 하며 나의 사례와 연결 지어 보도록 하겠다.



나르시시스들은 자의식을 발달시키는 데

심각한 인격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고통받는다.

이 결함 때문에 어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는 경계가 있으며 타인은 자신의 연장이 아니라 별개의 존재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들은 타인이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아예 타인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듯 여긴다.


따라서 나르시시스트는 자기를 만족시켜 줄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들을 자신의 일부인 양 다룬다.

또한 그런 사람들에게 나르시시스트의 기대를 채워주는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는 바람을 자동적으로 투사한다.

[도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_샌디 호치키스_교양인



직장 상사에게 경험한 나르시시즘

직장 생활에서 20년 차에 어느 정도 지적이고 조용하고 차분한 기질을 지닌 상사가

출근을 하면 중앙홀에서 자신이 주말에 남편과 있었던 일, 남편에게 본인이 해준 음식들, 남편 친구가 왔을 때 대접했던 음식 등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근무처에서 직장 동료로서는 물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으나 한번 입을 열면 1시간 30에서 2시간 동안 계속하고 중간에 말을 끊고 일하러 복귀해아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상사의 말을 끊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게 매일 지속되었다.


업무 관련 협의나 결재를 받으러 가면 본인이 전 근무지의 악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맺힌 사람처럼 계속 되풀이하였다. 상사의 특징을 정리하면 물어보지 않았던 사적인 일상을 매일 직원들에게 공유하며 관심과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자신의 현모양처의 가치를 알아봐 달라는 의미인지....


사람은 누구나 장, 단점이 있고 상사의 업무를 대하는 첫 이미지는 차분하게 일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으나 점점 사적인 대화가 확장되고 본인 일 처리 시간 확보까지 어려움을 겪게 되게 되었다. 본인뿐 아니라 소속 직원원들이 이 부분으로 모두 함께 굉장히 에너지가 소진되고 힘들어하였다. 특히, 상사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포용적인 애티튜드를 취하였으나 직장 내 모든 대상에게 마음속 깊은 불신과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 당사자 앞에서는 직접적인 본인의 감정을 숨기고 상급자로서 업무 지시도 제때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지녀 조직 내 업무 체계에 문제가 많았다. 상사는 60에 가까운 여자였는데 출근을 하면 신참 직원부터 관리자까지 모두의 흉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보면서 묘하게 조직의 분위기를 흐렸다. 나는 중간 관리자로 후배들을 보기에 이 상황이 매우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한마디로 상사는 본인은 완전하고 유능하나 피해자이다. 피해자 모드를 상시적으로 취하고 부지런히 모든 직원의 가치를 폄하하고 본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무능하고 결점이 많고 본인만이 우월하다는 것을 못난 행동으로 증명하고 다녔다. 또한 직장생활에서 힘들어하는 부하직원이 본인 앞에서 업무의 어려움을 울면서 호소하면 '너는 마음공부(심리 치료가)가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을 하였다.


희한하게도 상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 공간으로 찾아와서 아주 조심스럽게 심리적, 업무적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그들은 벨린다를 희생시켜서

자기들의 우월성을 회복했다.

이러한 왜곡은

나르시시즘적 진행의 피할 수 없는 특징이며,

당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든다.

p.200


[도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_샌디 호치키스_교양인



나는 상사와 업무 공통분모가 많고 나름 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쌓여 상사의 가족사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가족 중 한 명이 적극적인 돌봄과 희생이 필요한 구조였다. 어느 날은 상사가 자신의 분리된 업무 공간을 티 나게 잠그고 우울하다는 티를 상당히 내었는데 상사의 정신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나는 퇴근 후 재즈 공연을 하는 와인바에 가서 힘겨움(그 당시에는 관계 형성의 초창기여서 탐색 시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에 대해 들어주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직장 상사와 경계 설정을 못한 실패한 부분이다.)


당연히 상사는 직장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남편에게 요리해 준 이야기, 본인이 요리를 하면 뒤에서 남편이 백허그를 해준다. 자기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즉, 자신이 매우 매력적이어서 성적 매력이 있다는 등의 어필적 피력) 이런 말을 들으면서 요리 부분에는 어느 정도 아, 대단하시네요. 맞장구를 칠 수는 있지만 불쑥불쑥 시작되는 성적 어필에 대한 대화는 정말 황당하게 그지없었다.


직장에서도 상사는 자신이 도화살이 있어서 어느 근무처에서 남성 직원 두 명 모두 본인에게 관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은 여자로서 매력이 상당하여 모두 자신에게 홀리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다라는 것을 직원들에게 어필한다는 것이다.


우리 근무처는 굉장히 중립적인 공무원 사회이고 자신의 외적인 매력이 직장에 큰 의미가 없는 곳이다.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 꺼내는 상사의 말은 주말이나 저녁에 친한 친구나 모임에서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나눠야 하는 대화인데 한 번도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자신을 돋보일 수 있는 기-승-전 남편과 남편 친구들 이야기이며 성인 자식 2명이 있지만 자식이야기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상사는 '내 남편은 나를 너무 좋아한다.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나를 떠나지 않는다.'

(하... 이걸 내가 굳이 알아야 하나~)


'어제 남편 이발을 해줬다, 나는 남편의 머리도 직접 깎아준다.'


'우리 남편은 언제든지 직장을 그만두라 한다.'

(표면적으로 직장에서 안감힘을 가지고 버티는 느낌이 강하게 내비침.)


'남편이 차를 바꿔준다고 했다' (말 꺼낸 후 3년 동안 차를 바꾸지 않음.)


업무 특성상 상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대놓고 거리를 둘 수 없지만 2년 정도 듣다 듣다 지쳐서 공간을 분리하여 직장에서의 접촉을 최소화하였으며 물론 직장 생활의 질은 하락하고 업무 효율도 떨어졌다.


상사는 온 신경을 본인에게 쓰게 하는 특이한 관종으로 이게 도대체 무슨 현상인지 늘 뇌리에 고민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김경일 교수의 유튜브를 듣다가 일상 속에 있는 소시오패스보다 위험한 나르시시즘의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여러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에 대한 정보를 표면적으로 접하다가 어느 날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이라는 주옥같은 책을 발견하여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개념과 특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르시시트가 지배하는 직장 _그들보다 빛을 발하지 마라. p. 193



권력은 수치심에 더없이 좋은 약이기 때문에 나르시시트들은 당연한 권리를 추구하듯 권력을 추구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기 흥미만이 중요하며,
자기 길을 막아서는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법이란 없다.

가정 같은? 직장 P.195

나르시시스들에게는 자기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갖고 있는 타자와의 교착 상태가 이른바 정상적이고 균형 잡힌 상태이다.

- 중략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문제점을 자각했다면
당신은 이미 진짜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부디, 조심하시라.

[도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_샌디 호치키스_교양인



가정에서 경험한 나르시시즘

-친정 엄마와이 관계성을 성인기에 직면하다.


_ 경계를 침범하는 이기심 p.66

[도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_샌디 호치키스_교양인


성년기에 들어서고 친정 엄마가 양육에 대한 보상으로 딸인 나의 월급을 매월 생활비로 입금받기를 원하였다. 성년인 딸인 나는 자식 역할에 대한 혼란을 매우 극심하게 느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원하는 직장은 아니었으며 IMF 시절 친정 집의 경제적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선택한 직장이었다. 초기 직장생활에 많은 사건이 있어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


친정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서 직장을 다니며 자취를 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월급은 한 달에 200만 원 전 후였는데 한 달에 50만 원의 생활비를 원함. (매달 계좌이체)


자취는 처음에는 직장 근처 우연히 아파트 방 한 칸을 얻게 되었는데 200만 원이 수중에 없는 친정은 어릴 때부터 이모라고 불리는 아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 엄마는 나에게 다시 빌려주었다. 가정집에 거처하며 눈치 보며 생활하다 주말에 말 한마디 못하며 타지에서 만날 사람도 없고 외롭고 우울하게 보냈다.


아파트 한방 월세로 6개월 정도 살다 입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것 같아서 도저히 답답해 견디기가 어려워 새로운 지역도 적응하고 계약을 파기하고 집주인이 소개해준 근처 오피스텔을 월세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연히 보증금은 직장 담보로 1500만 원 빚을 내어 시작하였다.


친정 엄마는 딸이 타지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새로 시작한 일은 적성에 맞는지?
오늘 하루 어땠는지?
나의 상태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나의 월급날 이후 생활비가 입금이 되었는지만 주관심이며 무슨 사채업자처럼 송금을 독촉하였다.


습관성 생활비 타령에 자동이체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의 월급이 부모가 당연히 규칙적으로 받아야 할 권리인 것처럼 자동화하고 싶지 않고 내 형편에 따라서 소비가 많아지는 달(예를 들어 겨울철 난방비 추가 등)에 따라 매월 5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도 낮춰서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이미 굉장히 못마땅하고 땅으로 가라앉는 기운의 목소리로 싸한 공기를 대답 대신 하였다.


외할머니(매우 병적인 나르시시트)가 홀로 기초생활수급자로 힘들게 살았는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친정 엄마는 본인의 애정 결핍을 채우려는 듯 외할머니에게 매일 같이 방문하여 외할머니를 돌보고 살림을 해주며 딸인 나에게 "네가 보내준 돈으로 내가 효도한다"라고 말하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이게 도대체 뭔가" 정리가 안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 날 꿈에 "외할머니가 갑자기 과도칼을 들고 손녀인 나에게 매우 불만인 듯 한 표정으로 네가 해준 게 뭐 있어"라는 말을 하였다.


너무 무섭고 황당하여 친정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하니


"네가 외할머니에게 해준 게 뭐 있냐"라며 타박하고 비난하듯이 말하였다.


친정집 역에 도착만 하면 "어느 집 자식은 뭐 해줬다. 주로 새로 나온 전자제품(최신식 TV 등), 어디로 여행을 보내줬다. 연예인 누구는 뭐 해줬다더라, 얼마를 벌었다더라. 내가 해외여행 가는데 너는 용돈도 안 주냐(매우 괘씸해함. 형편이 안 좋아도 지인들과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다녀 옴.)


왜 선물을 안 사주냐? 왜 필요한 걸 물어보지 않느냐? 는 등 사람을 끝없이 지치게 하였다.


친정 형편이 더 어려워지고 결혼 후에도 끊이지 않고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부담을 지우고 육아 휴직 후 타 지역에 다시 발령을 받아 출근 첫 버스를 1시간 30분 타고 새로운 직장에 초조한 마음으로 걸어가는데 친정 엄마가 전화를 해서 "백만 원?(정확한 기억은 아님.)이 당장 필요하다 보내라"라고 말함. 당시 너무 황당하고 통화 전 딸인 나에게 "지금 뭐 하고 있는지~ 통화가 되는 상황인지 ~안중에도 없었다.


덧붙여 엄마는 "나는 지금 마른자리만 앉아서 일을 할 수 없으며 일을 하기도 싫다" 내가 너를 키웠으니 나를 책임져라"라고 말함. 당시 친정 엄마의 나이는 현재 내 나이 4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또한 엄마가 갑자기 전화해서 "지금 아빠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니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서 2,000만 원을 보내라. 부모가 없으면 네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라고 전화가 왔다. 당시 어린 자녀를 친정에 잠시 위탁하는 상황이라(내가 상황적 도움이 필요한 약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고민 없이 직장에서 외출을 달고 대출을 받아 송금했다. 14년 동안 빚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친정 엄마가 전화를 해서 (이 당시에도 친정 엄마는 가출상태여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밑도 끊도 없이 카드값 내야 하니 100만 원 보내라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엄마가 돈을 보내라고 하면 당연히 보내야 한 줄 아는 괴로워하는 미숙한 존재였다.)


몇 년 전부터 최근에 엄마가 노인 일자리로 1년 계약으로 작은 생활비를 벌어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갑자기 주린이가 되더니 주식 상담방 같은데 몇 백만 원을 내고 종목을 추천받으면서 아침마다 '이 종목을 꼭 사야 된다'라고 게릴라성 톡을 보내고 나는 주식에 별 관심이 없다. 주식 아니어도 일 때문에 너무 바쁘고 그냥 나는 일한대로만 벌고 살 거다"라고 대답을 하니 "넌 정말 이상하다. 온 국민이 다 주식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라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1년 후 설 명절에 내려가자마자 친정 집에 도착했는데 "아빠한테 비밀인데 주식으로 1,000만 원을 잃었다. 새로 직장 출근하려면 차가 필요하니 네 카드에서 500만 원만 빼서 아빠 몰래 주라"고 말을 하였다. 엄마는 전라도 여자여서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데 도착하여 이 말을 듣는 순간 입맛이 뚝 떨어져 어떤 음식을 먹어도 어떤 맛의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상황에도 각각의 재료값을 나열하며 본인이 얼마나 음식을 맛있게 했는지 계속 설명하며 말을 멈추지 않는다.


또한 성인이 되어 초기 직장인일 때 부모 지인 모임에 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따라갔는지 너무 부모와 정서적으로 결탁되었던 건강하지 못했던 지난날들)


지인들이 엄마가 없을 때 '타지에서 힘들게 사는 딸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는다며 너네 엄마가 자랑하더라. 쯧쯧 너는 앞으로 친정 덕 못 보고 살겠다고 생각해야겠다, 나 같으면 딸 등골 빼먹지 않고 어디 가서 파출부라도 하겠다"라고 말을 주변인들이 이구동성 말하는데 나는 정확한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럽고 속상하여 눈물이 주르륵 흘러 베갯잇을 적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10대에 친정 아빠가 폭력적이고 알코올 중독자여서 친정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아서 친정 엄마가 2~3번 정도 가출을 했는데 학교를 하교하고 돌아가면 어느 날 엄마 옷의 일부가 아파트 쓰레기장에 있는 게 보였으며 "아! 엄마가 나갔구나'하고 어떤 마음이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고 엄마가 가출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가출에 대한 언 지를 하지 않았다.


또한 매일 집에서 울화와 한이 서린 큰 목소리로 지인에게 하소연하는 전화를 하루에 3~4시간 토해내며 하거나 종교활동을 핑계로 성당 활동을 하러 거의 집에서 차분히 있지 않았다. 아침에 아빠가 출근하면 난 평생 알코올 중독자의 폭력성에 대한 아빠의 흉을 엄마와 보았다. 엄마는 너희들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가정을 지키는 거야라는 것을 끊임없이 세뇌하였다. 성인이 되고 엄마의 패턴을 살펴보니 의존성이 굉장히 높고 본인은 힘든 일을 피하고 하기 싫어하지만 남에게는 강요하는 그런 스타일이다. 어른의 삶으로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해 자식에게 짐을 지워 난 평생 왠지 모른 가슴이 먹먹함과 우울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잘 수 있는 집과 제때 먹을 수 있는 끼니는 고민하지 않고 보급받을 수 있었다. 밤마다 공포의 부부 싸움으로 인한 홀로 공포감을 견디며 다음 날 팅팅 부은 눈으로 매일 같이 조금 늦게 등교하는 것 제외하면..... 나의 어린 시절은 의식주는 제공받고 있는 취약한 어린아이와 10대 시절을 보냈다.


나는 공무원이다. 나는 직장생활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받아낼 돈만 늘 언급한다. 엄마는 40대 초반부터 "공무원이면 내가 기초생활 수급자가 못 되잖아"라고 말했다. 들을 때는 나의 불편한 감정이 뭔지 몰랐으나 지금 생각하면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꼈다. (왜 본인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야 된다고 40대 중반부터 생각했을까, 돈에 대한 갈망과 욕구와 일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의 모든 불안과 공포, 그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딸에게 전이시키며..)


직장 생활 1~2년 차에 다른 집처럼 모녀 여행을 통한 행복을 흉내 내고 싶어서였는지 엄마와 함께 여행사를 통해서 태국 여행을 갔다. 일행 중 한 팀이 친정 엄마와 조카를 동행한 6인 가족의 팀이었는데 사위가 능력 있고 사람 좋은 머슴형 스타일이고 딸은 굉장히 잡티 하나 없는 40대의 세련되고 고운 외모를 지녔으나 굉장히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가족이었다. 동행 가족의 아들과 딸이 같이 왔는데 아이들의 표정은 온화하고 착했다.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는데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성품의 자녀들이었다. 공항 입국 전부터 친정 엄마는 낯선 가족의 할머니에게 지나친 관심과 호의를 베풀며 마치 본인이 딸인 듯 다가가 친근하게 대화를 하고 그 할머니와 모녀 여행을 온 듯 이상한 포지션을 취했다. 갑자기 나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나는 굳이 쌀쌀해 보이는 처음 만난 40대 아주머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중 어쩔 수 없이 그 가족과 가깝게 동행하며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직업을 듣기 전에는 말을 안 걸었던 그 아주머니는 갑자기 호의적으로 변하며 친절하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이렇게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관계적 양상으로 여행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17년이 흐르고 최근에 우리 집에 방문한 친정 엄마에게 왜 태국 여행 때 처음 본 할머니와 계속 붙어 있었냐고 물으니 "네가 그 세련되게 생간 여자가 좋았는지 딱 붙어 다녀서 내가 그랬다"라고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서 말을 내게 하는데 정말 황당하였다. " 아... 우리 엄마의 사고 체계는 저렇구나. 본인이 유리하게 왜곡해서 말하는구나, 마치 본인이 피해자였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엄마와 옛 상황과 감정을 나누고 싶지 않게 되었다. 말을 꺼내면 나의 상처만 덫 날 뿐이다.


성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수치심이 가득한 나르시시트 배우자를 만났다. (또 다른 어려운 관계의 시작의 서막이 열렸다.) 친정 엄마와 남편과는 서로 상극이었다. 결혼 전날 엄마는 "그동안 네가 고생 많았다"라고 말을 하여 그동안 마음 고생했던 마음이 잠시 녹는 듯하였는데 그 마음이 미처 녹기도 전에 "이제 결혼하면 한 달에 30만 원씩 생활비를 보내면 될 것 같다."라고 다시 말을 하는 것이다.


(이에 신랑은 정색하며 그럼 시댁에도 똑같이 30만 원을 보내겠다고 말함.)


나는 "아......... 계속되는구나..." 결혼 초창기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우리 집에 방문했을 때 지나치게 딸과 사위를 의식하면서 조심하는 듯이 행동을 하지만 모든 신경줄을 본인에게 어떻게 신경을 쓰는지에 초점을 두며 조용히 지내시다 가는 듯하다가 댁으로 귀가 후 서운함을 대폭발 한다. 어버이날, 본인 생일 같은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당일 인사가 아닌 1주일 전부터 부모에게 신경 안 쓴다. 미리미리 연락 안 한다. 나는 부모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등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쏟아내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던 나는 그냥 마음이 돌처럼 굳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채 불편한 감정을 지니고 생활을 이어나갔다. 결혼 후 엄마와의 관계가 더 힘들어지는 듯하여 1년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물론 마음속에 끊임없이 죄책감에 소용돌이치게 되었지만.....


성인이 되고 한참 후 40대 초반에 이르렀을 때 대화 중 "엄마는~"이라는 주어 대신에 끝없이 "나는~ 내가~"라는 단어를 되풀이하는 엄마의 언어가 상당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왜 엄마는 딸에게 말을 할 때 엄마는~이라고 말을 하지 않고 나라는 말을 계속 쓰느냐. 엄마는~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니 "너는 왜 엄마를 늘 나쁘게 보려고 노력하느냐, 나는~이라는 말이 어때서~ " 네가 불편하든 말든 나는 상관없다는 불쾌함만 잔뜩 표현하고 대화는 종료되었다.


엄마는 본인의 서운함을 카톡에 수백 글자로 내가 출근하기 전에 보내는 특성이 있었으며 처음에는 읽었으나 어느 날부터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기분을 잡치기는 싫어서 무시하였다. 당연히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카톡 테러는 멈추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10대 중반의 청소년을 양육하는 부모가 되었고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의 토대가 없는 한 나 또한 자녀에게 무의시적, 의식적으로 상처를 대물림할 수밖에 없다는 뼈저린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직장 스트레스로 번 아웃이 크게 와서 일상이 무너져 내렸는데 상담치료를 받으며 적극적으로 나와 부모와의 관계 양상을 되짚어보고 개념화하면서 관계에서 낭비되었던 많은 혼란과 감정적 소용돌이를 줄이고 새로운 관계 기준을 설정하는 중이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나르시시트의 연결고리

계속적으로 정서적, 경제적인 마음의 짐을 지우는 친정엄마는 딸인 나의 역할을 역전이 된 부모-자녀 관계 설정을 통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일으켰다.


나는 현재 40대 중반으로 직장 생활 20년에 번 아웃이 와서 병가를 쓰며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늘 자신의 욕구를 강요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비난을 일삼는 친정 엄마가 너무 버겁고 힘들다. 관계에 거리를 두면 또 죄책감이 든다.

"너는 너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다" "너는 왜 이렇게 사람에게 무심하냐"


딸로서 나는 엄마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도 없고 건강하게 경계를 두는 방법도 몰랐다. 그리고 그럴 의무도 없다.


직장 상사의 나르시시즘은 상사가 다소 표현하는 화법이 조용조용하고


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나르시시트라고 판단 내리기까지는 2년 이상의


마음속의 괴로움과 소용돌이에 휘몰아쳤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승급 준비로 퇴근 후에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여러 경계를 침범당하여


공부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모든 귀결을 한 사람 탓으로 몰 수는 없지만


나의 정신 건강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상사에 대한 괴로움이 대못처럼 뇌수에 꽂힌 듯했다. 이 당시 하루에 1만보에서 5시간씩 걷기를 통해 마음을 스스로 해독하고자 노력하였지만 쉽지 않았다.


친정 엄마는 굉장히 높고 큰 목소리 톤, 쏘아붙이는 듯한 울분, 주로 부정적이고 비난하는 말을 사용하고 본인은 완벽하고 희생자 모드이다.


두 상황에 사람의 정서적 결이 달라 처음에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지만



드러나는 주요 특징은 "나는 완벽한 인간이야"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나는 매우 힘들어. 나는 피해자, 희생자야" "그러니 너희가 내 말을 들어줘야 해."


"너희가 내 욕구를 충족시켜"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상대에게 풍긴다.



또한 대상을 구분하여 대화의 내용과 성격을 말하지 않는다. 동창이나 종교에서 만난 지인, 남편, 일반적인 이웃 주민 등의 대상과 구분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 감정적인 느낌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나는 늘 어른이 고팠다. 인생은 어떤 것인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지혜로운 안내자를 필요로 했다. 부모가 그런 역할을 못하면 사회에서 다른 어른을 찾아서 김미경, 김창옥 강의도 들어보고 혜민 스님, 정목 스님, 법륜 스님 강의도 들어보고 전국의 템플 스테이도 다니면서 108배를 하며 수행해보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수많은 관계의 상처들의 잔해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물론 부모에게 양육의 물리적 지원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하지만 나의 정서적인 건강을 해치면서 불필요한 죄의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 없다. 더 이상 오르락내리락하는 불안정한 부모의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 삶을 건강하게 영위할 건강한 경계선을 세워야 한다.


나를 지키고 내 가정, 내 자녀를 지키는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은 상담과 책을 통해 받는 듯하다.


직장 상사와 친정 엄마에서 표출되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연결을 지어보니 "아... 이들이 나르시시스트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특성을 규정지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위안이 되고


경계 세우기에 지침이 되었다.



자기와 타인들을 건전하게 경계 짓는 일은,

나 자신을 지각하는 방식은 물론이요.

타인을 경험하는 방식, 더 넓게는 타인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경계를 의식하고 나와 타인의 개별성을 인정해야만 건강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_p. 66

[도서] 나르시시즘의 심리학_샌디 호치키스_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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