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완의 아버지는 집에 거의 들어오시지 못했다. 지완이 젖도 못 떼었을 때 노름하다 잃은 돈을 갚겠다며 잠도 줄이며 일을 하셨다. 노름에 빠진 지완의 아버지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은 말도 못 하는 지완이었다.
이른 새벽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 사진을 어루만지며 지완의 아버지는, ‘나는 나의 아내와 저 작디작은 아가를 평생 돌볼 자신이 없어요. 엄마, 엄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속삭임으로 외치고 있었다. 반지하 방의 높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마치 어머니의 음성처럼 느껴졌고, 그 빛이 지완의 보드랍고 통통한 뺨에 내리 앉아 살살 쓰다듬었다고, 지완의 아버지는 자장가처럼, 어떨 땐 무용담처럼 지완을 무릎에 앉혀두고 말씀하셨다.
지완의 아버지가 두 달에 한 번, 어쩔 땐 넉 달도 넘겨 돌아오실 때면, 지완은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더 자라서는 옆에 붙어 앉아서, 수백 번도 넘게 들었을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듣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다시 일하러 나가시는 밤은 지완에게 너무도 슬펐다.
“아버지, 이번엔 언제 돌아오세요? 석 달 안에는 돌아오시겠죠?”
몸은 다 자라고 목소리도 꽤 낮아진 아들에게 옅은 미소와 짧게 어깨를 툭 치며 지완의 아버지는 항상 문밖을 나섰다. 그런 밤에 지완은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속 그날처럼 아스라이 내려오는 창밖의 불빛을 한참이고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열일곱의 봄,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복도에서 누군가 지완의 어깨를 툭 쳤다. 아버지의 손길과 비슷해서 아버지의 눈이 있을 법한 약간 위쪽을 빠르게 바라보았다. 그것보다 조금 더 위에 휘오의 얼굴이 있었다.
“지완이 아니야, 너?”
휘오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였다. 그렇게 친하진 않았지만, 함께 방송부에 들었었다.
“맞지? 너도 이 학교 왔구나. 잘 됐다! 넌 몇 반이야? 난 2반!”
지완은 3반이라 답했다.
“오, 옆 반! 자주 보자! 점심때 같이 고?”
지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자신의 반으로 돌아가는 휘오의 뒷모습을 보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못 본 새 엄청 키가 컸네.
아마 그렇게 생각했다.
휘오는 언제나 교복 재킷은 의자에 걸어두고 셔츠에 넥타이만 매고 다녔다. 선생님들께서 “강휘오, 조끼랑 재킷은 어디 두고 다니냐.”라고 외치는 게 복도에 종종 울렸다.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아, 입을게요. 죄송합니다-!”라고 장난스레 말하면 선생님도 주변의 학생들도 킥킥대며 웃곤 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셔서 조금 슬퍼지던 수요일 6교시, 창밖으로 언제나처럼 축구하는 휘오를 보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야, 패스 패스!”
휘오의 목소리가 3층까지 들리고 얼마 안 돼, 휘오가 팔을 붕붕 돌리며 골 세리머니를 했다. 지완은 큭큭 웃었다. 작게 흔들리는 뒤통수에 ‘게이 새끼’. 네 글자가 꽂혔다. 목덜미가 따가울 정도로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얼굴이 빨개졌다는 건 지완도 알고 있었다.
진짜인가 봐. 얼굴 빨개진 것 봐.
선생님이 교탁에 출석부를 쾅쾅 내리치자 교실이 조용해졌다.
응, 나 진짜 게이인가 봐.
왜 안 좋은 소문은 이렇게 빨리 퍼지는지. 어머니가 이 소문을 접한 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전교 3등을 했을 때도, 도서부 부장이 되었을 때도, 글쓰기 대회에서 금상을 탔을 때도 전혀 몰랐으면서.
지완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손 같은 빛줄기 아래 앉아 있던 어머니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앉아.”
낮은 음성과 함께 지완은 어머니 앞에 천천히 앉는 중이었다. 오래된 나무 십자가가 지완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때렸다. 눈 한쪽이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훅, 검게 가려졌다. 머리를 부여잡은 지완의 뒤에서 천둥보다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완, 내가 오늘 교회에서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너 호모니? 맞아? 맞냐고! 대답해!”
귀를 감싼 지완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호모, 호모, 호모. 맞아, 맞아, 맞아’하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교회 집사님도, 하은 엄마도, 거기 있는 사람이 다 안다는 듯이 말을 하더라. 말해 봐, 말해 보라고!”
지완은 안 보이는 한쪽 눈 때문일까, 몸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면 이렇게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완의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축 늘어진 지완의 양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제 교회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라는 거야! 대답해, 너 호모야?”
다시 정신이 든 건 이른 아침이 되어서였다. 오래된 전화기가 세차게 울렸다.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지 전화기 소리 외에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붙잡고 전화를 받았다.
지완은 달렸다.
뺨까지 굳어있는 피에 눈물이 닿자 입안으로 울렁이는 철봉 냄새가 훅훅 들어왔다.
지완은 차가워진 이진성의 손등 위에 그가 사랑하던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핏물이 손등 위에 번지자 아버지의 손이 생기를 찾은 것만 같았다. 할 수 있다면 지완은 자신의 뺨으로 아버지의 야윈 몸 구석구석을 그날의 빛처럼 당신의 어머니처럼 토닥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