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록과 지완

1부

by 글쟁이 오리


지완은 새록의 분홍색 엄지손가락이 소풍 도시락의 소시지 같다고 생각했다. 소시지는 꽤 통통해서 지완의 작은 손바닥에 한가득 잡혔다.

“선생님 손은 참 귀엽네요. 우리 엄마는 제 손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고 했는데. 내 눈엔 선생님 손이 더 귀여운 것 같아요.”

나는 황급히 엄지손가락을 숨겼다.

“그래? 선생님 손이 조금 다쳐서….”

아이의 말에 죄책감이 느껴져서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야, 손지완, 너희 엄마 왔어!”

문 앞에서 지완의 친구가 외쳤다.

“선생님, 저 가볼게요! 내일 또 봐요!”

지완이 패딩을 대충 챙겨 입곤 엄마- 하고 달려 나갔다.

몇 달 전 집에서 술을 마시다 기억을 잃었다. 집주인이 월세를 받으러 왔다가 거품을 물고 쓰러진 나를 발견했고, 나는 입원하기로 했다. 집주인이 날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프지 않게, 소리 없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알코올 의존증에 우울증. 그게 내 병명이었다.

퇴원은 생각보다 빨리할 수 있었다. 의사와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문밖을 나서자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가 보였다.

엄마였어, 월세 날이 아닌데도 집주인이 나를 찾도록 한 게?

엄마가 새로 준 목숨이라면 기꺼이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였다.


센터에서 난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는 놀이 보조였다. 처음엔 나의 우울감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햇살 같은 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선생님, 언제 언제 와요?”

“키가 엄청 크다!”

지완은 재잘재잘 참새처럼 떠는 아이들보다 항상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아이였다.

“손지완.”

어느 날 아이가 내 앞에 통통한 배를 살짝 내밀고 서서 이름을 알려줬다.

“손지완이에요, 내 이름.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난 놀랐다. 살아오면서 처음 들어보는 아주 아주 따뜻한 목소리. 놀란 마음을 숨기며 답했다.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윤새록이야. 윤, 새, 록.”

못 알아들을까 천천히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날 보면서 지완이 귀여운 보조개를 보이며 말했다.

“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할 때 새록이죠?”

“맞아. 기억이 새록새록.”

귀여움에 나도 모르게 하하 웃었다.

“새록새록 선생님, 우리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만나요. 매일매일 만나요.”

그때 난 오랜만에 살고 싶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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