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여행에 관해 갑자기 든 생각
여행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가, 나는 오래도록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미디어 속 청춘들은 이따금씩 여행을 떠났고, 배낭여행이나 해외여행 같은 것들은 젊은이들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것, 어쩌면 의무 같아 보이기도 했지요.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처음 혼자 떠난 여행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떠난 부산 여행이었습니다. 남들은 스무 살이 되는 00시, 술을 마시고 싶어 하던데, 그때의 나는 '청춘이여, 떠나라!'의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첫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은 별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기분 좋은 것이었죠. '자유로움'. 나는 처음으로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하죠, 학교라는 감옥에서,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흑역사로 남은 이 낯부끄러운 문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나는 학창 시절 언제나 여유와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분명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보다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말이죠, 나는 오래도록 이상한 결핍을 느꼈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조용하고 생각보다는 지루했습니다. 가슴을 뛰게 할 만한 인상적인 일이 없었어요. 나는 그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학교에선 반드시 하루에 하나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있었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시험을 보거나 그 결과를 기다리는 일. 학교의 일진 무리가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 스트레스 주는 팀 활동이나, 반대로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팀 활동. 하루하루가 지독하게 정신없었기에 나는 이 지루함이 좋았습니다.
나에게는 여행을 즐기는 특별한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테마곡을 정하는 것입니다. 여행지마다 노래 몇 곡을 선정해 반복적으로 들으며 여행하는 것이에요. 그 노래를 들으면, 여행하던 때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생생한 풍경과 당시의 냄새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오직 여행을 한 나만이 할 수 있는 경험.
두 번째는 녹음하는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멍 때리다가, 식사를 하다가, TV를 보다가… 나는 여행 중 녹음기를 꺼내 아무 순간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여요, 이렇게.
겐트의 쓰레기 악사.
벨기에 사람들은 경적으로 합창해요.
인적 드문 대성당 앞에서.
마을을 울리는 사이렌 소리.
한적한 일요일 아침.
해녀 할망.
다섯 시, 타테이시 공원.
학교 다닐 때처럼 가슴이 시도 때도 없이 벌렁거릴 때, 뒷목이 화끈거리고, 누군가 손이라도 잡아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을 땐, 이 녹음을 틀어요. 어떤 사이렌 소리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어떤 한적한 거리의 소음은 향수를 불러일으키지요. 여행은, 나의 의지만 있다면 영원한 의미를 지닐 수 있어요.
마지막은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일기지만, 하루에 다섯 번씩 써도 괜찮아요.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이나, 생각한 것들. 그때의 풍경, 만난 사람들을 그려 넣기도 하고. 쓰다가 지쳐 잠들어 완성되지 않은 글들도 있지요.
누군가 여행은 경험이 될 수 없으며, 커다란 의미를 가지지 않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는 더더욱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쉽게 피로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여행이 갖는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 믿습니다. 특히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본 적, 한숨 쉬지 않고 하루를 보낸 본 적 없는 사람에겐 말이죠. 오로지 나의 의지로, 좋아하는 것을, 아니면 좋아할 것 같은 것을 고민하고 행하는 일은 치유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앞으로는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