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아 어디 있니
나는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내 감정이 어떻다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주 건강한 언어라고도. 서로의 존중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감정을 내보이며 담담하지 않은 상황에는 당황스럽다. 마치 내가 껴안아 될 것만 같은 그 상황을 마주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감내하며 스스로를 담백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데도 말이다. 격양된 감정은 볼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게 하며 모든 장면들이 저만의 시선으로 쏠리게 되기 마련이다.
이럴 땐 정심이를 찾으며 가다듬고 가다듬는다.
마치 시소 위에 감정과 이성을 올려놓고 저울을 하듯 둘의 눈치를 보며 달래고 또 달랜다.
희로애락은 필요한 감정들인 것이니,
이 또한 보통의 일이 아닌 것인가
라며.
오늘도 정심이를 찾으며 저울을 한다.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나를 평안하게 하는 건 무언인 건지.